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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만경봉-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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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만경봉-92호

입력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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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봉-92호의 일본 니가타(新瀉)항 입항 포기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신경전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만경봉호는 북한의 원산을 출발, 지난 9일 니가타항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나 북한은 출발을 취소했다. 니가타에 입항을 반대하는 일본 우익단체의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일본 정부가 경찰 세관 출입국관리소 직원 등 100명을 동원해 철저한 선상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 졌기 때문이다. 니가타현 지사가 입항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자민당의 보수우익 정치인들은 차제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부추겼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일본이 만경봉호 입항을 규제하는 것은 악랄한 정치적 도발행위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일본은 배의 억류를 포함한 도발적 조치를 모의했다"면서 "이러한 소동은 공화국(북한)에 대한 엄중한 주권 침해행위"라고 비난했다. 일본도 뒤질세라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은 "문제가 없다면 당당하게 오면 될 것"이라면서 "만경봉호 외의 다른 북한 선박에 대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의 남산3호(298톤급)가 안전구조 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교토(京都)의 마이즈루(舞鶴)항에서 한때 출항이 금지됐다.

■ 만경봉-92호는 19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맞아 건조된 여객선과 화물선 겸용. 원산에 정박하면서 한 달에 세 번 정도 니가타를 오간다. 9,672톤 급으로 승객 200명과 화물 1,000톤을 싣는다. 배의 이름은 김일성의 고향인 평양의 만경대에 있는 만경봉에서 따왔다. 이 배는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 때 미녀응원단 355명을 태우고 다대포항에 정박,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북한은 이 배를 부산시민과 보도진에 공개 했다.

■ 만경봉호의 곤욕은 노골화된 일본의 북한 때리기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해 있었던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납치자 문제를 시인한 게 계기가 됐다. 일본 언론들은 수교교섭 등은 뒤로한 채 납치자 문제를 부각시키기에 바빴고, 피해자 가족모임은 북한혐오증을 주도했다. 탈북자의 미 의회 증언에서 만경봉호가 미사일 부품 밀수에 이용됐다는 증언이 나왔고, 마약거래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미국은 핵 문제와는 별도로 북한이 마약밀수와 위조달러를 만드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 일본에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북한 압박이 쉽게 수그러 들 것 같지 않아, 만경봉호는 계속 원산에 있어야 할 처지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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