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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남북관계 새 패러다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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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남북관계 새 패러다임을 위해

입력
2003.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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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3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다. 분단 이후 55년 만에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이른바 '적대적 의존관계'를 정권강화에 이용하지 않고 화해협력을 통해 공존공영하자고 약속했다.과거 남북한은 적대적 의존관계라는 틀 속에서 서로 상대방의 위협을 강조하고 때로는 과장하면서 내부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해 왔다. 양측 모두 애써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 사이의 적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고 '호혜적 의존관계'로 발전시키기로 약속한 것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지속해왔던 대립·갈등의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협력, 공존공영의 호혜적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우리 사회만 하더라도 북한의 변화 여부, 대북지원과 관련한 '퍼주기' 논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의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과 관련한 논쟁 등으로 '남북화해시대의 남남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 내부에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신·구 패러다임간에 첨예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갖는 '민족사적 의의' 마저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대북송금 관련 특검수사가 진행됨으로써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남북관계는 물론 남남갈등을 다시 증폭시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정상회담의 대가로 거액의 대북 송금이 이뤄진 것으로 밝혀지면, 남북정상회담은 '부정한 거래'의 산물로 되고,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남북한 당국은 '부도덕한 정치세력'이 되고 만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 전에 추진했던 정상회담은 실정법을 초월한 '통치행위'로 봐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거나 국정조사를 통해서 해결했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실정법을 정비해가야 할 시점에 과거의 낡은 잣대를 가지고 변화한 현실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정치 세력들의 '주관적 의도'가 무엇이든 정상회담 이후 나타난 '객관적 사실'들이 남북관계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개발 논란으로 남북정상회담이후의 관계개선 노력이 위기에 봉착했지만, 분명 남북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남북 사이에 철도 도로가 연결되고, 교류협력이 늘어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제 남북한 모두 대결적 냉전사고에서 벗어나 민족공동번영을 모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남북간 공존체제를 유지하려면 양측 모두 상대를 부정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자폐적인 정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북한당국도 남북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진정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핵 문제의 조기해결과 과감한 개혁·개방 추진, 대남정책에 있어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북한 경제위기의 지속 등으로 남북간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할만큼 남북간 국력격차는 커졌다.

북한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가속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영향력, 즉 북의 통일전선전술도 경계해야 하지만 반대로 남에서 북으로 미치는 영향력 즉 '역통일전선전술'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고 유 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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