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님!사람은 돌아간 다음에야 바른 평가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진가를 모르다가 떠난 뒤에야 그 사람의 위대성을 발견한다는 얘기지요.
형님. 형님은 한 그루 커다란 느티나무였습니다. 동구 밖에 잎을 무성하게 늘어뜨리고 늠름하게 서 있는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 말입니다. 뙤약볕이 따가운 무더운 여름날, 동네 아이들에게 시원한 놀이터를 마련해준 고마운 나무였죠.
그런데 어느날 무성했던 느티나무가 없어졌습니다. 햇빛 쨍쨍 쬐는 여름날,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흐르는 땀을 식히며 정담을 나눌 수도 없어졌습니다. 형님은 살아 계실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던 그런 한 그루의 느티나무였습니다.
마흔을 넘긴 동생, 심지어 환갑이 넘은 동생들도 형님에겐 너무 어리기만 했습니다. 유달리 형제애가 두터웠던 형님이 어린 동생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형님의 정이 그립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우리 형제들이 시제(時祭)를 다녀올 때만 해도 모두들 전혀 몰랐습니다. 심지어 당신도 그런 몹쓸 병에 걸린 줄을 모르셨죠. 모처럼 같이 가는 동생들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해 하셨습니까. 배꼽 빠지는 우스개로 동생들을 얼마나 웃겼습니까. 우리들 모두 형제간 우애에 즐거워서 어쩔 줄 몰랐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십년만 더 사실 수 있더라도 이렇게 후회스럽고 애통해 하진 않을 겁니다. 아니, 삼년이라도 좋을 겁니다. 형님이 없는 세상은 우리 동생들에게는 너무 허전합니다. 이 동생,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울고 있습니다.
보고 싶어도 다시 볼 수 없는 형님이기에 그리움이 새록새록 가슴에 저려 옵니다. 죽음이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 세상 사람들은 어김없이 가야 할 길이지요. 형님도 그 길을 가신 거지만 어린 동생들을 고아마냥 남겨놓고 이렇게 먼저 가시다니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울지 않겠습니다. 울지 말아야지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굳건히 먹고 열심히 살아 가겠습니다. 아마 형님도 그걸 바라시겠지요.
조카들도 형님께 미처 다하지 못한 효도를 하려 형수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겠다고 새삼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효심 지극한 그 아이들은 생전의 형님과 우리들이 그랬듯이 형제의 우애를 더욱 다지면서 굳건히 살아갈 것입니다.
큰 형님. 형님도 이제 모든 걸 잊고 평안한 하느님의 품 속에서 영생을 누리십시오. 삼가 명복(冥福)을 빕니다. 아우 행원 드림.
/윤행원·경기 평택시 신장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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