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아, 미선아 미안하다. 휠체어라도 타고 나가 국민들과 함께 광화문을 가득 메워 평등한 한미관계의 물꼬를 터서 한을 풀어주마."미군 장갑차에 숨진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일련의 촛불 시위 현장을 지키던 '광화문 할아버지' 이관복(69)씨는 지금 서울 보훈병원 병상에 누워 있다. 지난 4월 초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은 이씨는 대장에 생긴 종양을 발견, 최근 이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비록 몸을 가누기도 힘들지만 13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는 여중생 추모 1주기 집회에는 링거를 꽂고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라도 참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수술 받기 나흘 전까지도 병원의 허락을 받고 촛불 시위 현장에 나갔어. 한 200번은 나갔을려나. 이번에는 한국에 주둔한 지 57년 된 미군의 본질을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로 생각해."
1965년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던 이씨는 1970년대 유신반대운동을 시작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 범민련 활동 등을 하다 4차례 옥고를 치렀다. 90년대 이후에는 민통련 의장을 맡으며 재야에서 통일운동에 앞장서왔다. 지난해 6월 두 여중생 사망 소식을 듣고 의정부, 양주 시위 현장으로 뛰어다니던 그는 11월부터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광화문 촛불 시위 현장에 나갔다. 쩌렁쩌렁 울리는 이씨의 "효순이 미선이를 살려내라"는 구호는 촛불 시위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이번 1주기 집회에선 수술 후유증으로 몸무게가 13㎏이나 줄어 그의 힘있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 것 같다.
"1년 내내 SOFA 개정을 요구하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깃들기를 기원했지만 달라진 게 없어 답답하다"는 그는 "두 여중생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국민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줘야 미국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야."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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