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히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책 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는 일도, 아이를 책과 친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않다. 이럴 때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과 의견을 나누면 큰 도움이 된다. '동화읽는어른' 이 바로 그런 모임이다.'동화읽는어른'은 사단법인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지역 모임이다. 10년 전 안동, 시흥, 부평에서 처음 시작돼 지금은 전국에 110개 모임 4,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1980년 생긴 시민단체로, '동화읽는어른'은 이 단체의 기둥이자 날개 역할을 하고 있다.
'동화읽는어른'에는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지역에 따라 교사 모임이 따로 있는 데도 있다. 회원들은 주 1회 공공도서관이나 사회복지관 등에서 만나 어린이책을 공부하고,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린이도서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부는 창작동화, 그림책, 옛이야기 등 장르별로 깊고 체계적으로 다룬다. 회원들은 평소 지역 도서관이나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돌보는 공부방에서 독서 지도를 하고, 학부모 대상 강좌를 연다. 또 매년 4월 둘째 주 도서관 주간이나 방학이면 독서교실을 마련하고, 봄 가을로 책 잔치를 열어 슬라이드로 만든 그림 동화 보여주기, 좋은 책 전시, 인형극 공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을 만난다. 서울에 있는 16개 구별 모임 가운데 금천구 모임은 특히 열심히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30여 명의 엄마들이 힘을 합쳐 시흥5동에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었고, 엄마들의 활동에 감탄해 힘을 보태주는 아버지 모임도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 도서관은 20평 공간에 4,500여 권의 책을 갖추고 있다. 많으면 하루 80∼100명, 평균 30∼50명의 어린이와 부모들이 찾고 있다. 비용을 마련하고 책을 모으고 내부를 설계하고 꾸미는 것까지 전부 엄마들 손으로 해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11일 정오 서울 동작구 모임 회원 8명이 동작도서관 지하 시청각실에 모였다. 오전에 도서관에서 열린 어린이 글쓰기 지도 강좌를 듣고 나온 참이었다. '동화읽는어른'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얘기를 들어봤다.
대표 유연숙(38)씨는 "다들 처음에는 자기 아이를 위해 모임을 시작하지만 함께 모여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차츰 내 아이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관심이 넓어진다"고 했다. 어린이책을 통해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시사 문제에도 눈을 뜨게 되면서 집안에 갇혀서 자칫 좁아지기 쉬운 시야를 넓히게 된다는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갈등을 겪는 것도 공통의 경험이다.
"동화는 좀 더 마음이 따뜻한 아이, 경쟁보다는 함께 가기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요즘은 경쟁 시대잖아요. 애들 공부만 해도 그렇고. 그래서 이러다 내 아이만 뒤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요."(신영나씨·37)
"모임 가입 전에는 저도 내 아이만 똑똑하고 공부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죠. 이제는 달라요. 엄마가 책을 읽고, 그 엄마의 영향으로 아이가 달라지고, 그 아이의 친구가 달라지고, 그렇게 계속 넓히다 보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어요?"(전은주씨·38)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게 하고, 그 힘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동화읽는어른'의 꿈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어린이책을 직접 읽어 좋은 것을 고르고, 나쁜 책을 가려내는 파수꾼 노릇도 하고 좋은 책을 권하는 전도사 역할도 한다.
회원들은 어린이책 출판과 독서지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어린이책이 너무 유행을 타는 건 안 좋아요. 예컨대 왕따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유명작가가 책을 쓰면 비슷한 책이 줄줄이 나와요. 좀 괜찮은 책이다 싶으면 바로 만화로 나오는 것도 문제예요. 만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책이 조금만 두꺼워도 안 읽으려고 하거든요."(신영나씨)
"그림책을 아직 글자를 잘못 읽는 꼬맹이나 보는 것 쯤으로 여기는 편견도 문제예요. 초등 3학년 아이가 그림책을 갖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아직도 그림책을 보냐'고 면박을 줬답니다. 좋은 그림책은 어른이 봐도 좋은 건데." (우유정씨·35)
동화는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눈에는 동화읽는어른 모임이 좀 별나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화 읽는 어른들은 한결같이 "어린이책을 읽다가 스스로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놓고 아이와 부모가 서로 먼저 읽겠다고 다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자연히 책과 친해진다.
'동화읽는어른'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지역별 연락처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hildbook.org)에서 얻을 수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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