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발행·8,500원요즘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좋을까 고민하는 사람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게 할 수 있을까 고심하는 부모가 많을 듯 싶다. 물론 만화책 빼고. 하기야 책 말고 재미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 컴퓨터 게임, 놀이 공원, 친구와 모여 무슨 대단할 것도 없이 떠들고 노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책 읽는 것보다 훨씬 재미난 일이다.
그래서 독일 작가 하이델바흐의 이 그림책은 매우 특별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얼마나 재미난 일인지를 흥미진진하게 가르쳐준다. 주인공은 책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 울라와 독서란 언제나 따분한 일이라고 여기는 브루노. 울라는 '어떻게 하면 브루노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 사려 깊은 아이다. 결국 브루노를 책 읽기로 끌어들일 묘안이 떠오르고, 브루노는 울라에 이끌려 난생 처음 독서의 묘미에 푹 빠져든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하지만 그림책은 이런 이야기를 싱겁게, 그냥 교육적으로 풀어놓지 않는다. 초반 몇 장은 울라와 브루노의 성격, 생활 태도, 책에 대한 호감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림과 이야기, 해설이 곁들여진다. 그런데 아빠의 서가에 있던 커다란 그림책을 읽도록 울라가 브루노를 꼬드기는 데 성공하고부터는 해설이 없다. 울라와 브루노가 책에 빠져 겪는 환상적인 모험이 20여 장에 걸쳐 오로지 그림으로만 설명된다. 따로 쓴 이야기가 없어도 두 아이가 책에 빠져 어떤 일을 겪는지 환하다. "그래! 책을 읽는 재미는 바로 이런 거야"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책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울라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큰 새에게 붙잡혀 간다. 혼자 남은 브루노. 하지만 이제 브루노는 책 속으로 들어오기 전의 브루노가 아니다. 책 속의 마법의 세계를 믿지 못하고 새로운 모험에 겁을 내던 아이가 아니다.
친구 울라를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멀리까지 노를 젓고, 험난한 바위산을 올라가 닭을 먹이로 던져주어 괴물의 주의를 끈 뒤 재빨리 울라를 구해낸다. 다시 거룻배를 타고 큰 바다를 지나던 두 아이는 난데없이 거대한 폭포를 만난다.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빨간 줄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책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그림이 너무 진지하고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흠이 있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발상은 무척 신선하다. 독서의 묘미뿐 아니라 그림책의 힘이 어떤 것인가 새삼 다시 생각케 하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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