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11일 오후 동교동 자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대북 송금 특검 수사나 민주당의 신당 추진 등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통성과 역사, 한국 정치의 명분 중시 문화 등을 강조해 간접적으로 여권의 신당 추진에 섭섭함을 표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김 전 대통령은 이날 시종 낮은 목소리였으나 간혹 농담도 곁들여 전날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면담 때보다는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40분간 이뤄진 만남에서 정 대표가 "(거실에 걸려 있는) 김정일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보니까 당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면서 "김 전 대통령께서 남북관계와 외교분야에 대해 충고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내가 무슨 역할을 하겠느냐"면서 "여러분이 잘 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정 대표가 다시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물러난 이후에 더 잘 하셨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자 김 전 대통령은 "카터는 훌륭한 분"이라고만 말한 채 더 이상 대화를 잇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박순천, 정일형(정 대표 선친) 선생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일본 사람의 행동규범은 의리지만 한국 사람들은 명분이다"면서 "다나카 전 일본 수상이 록히드사건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이후 다나카파가 더 늘어났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문제가 생기면 명분이 없다고 이탈한다"고 한·일 정치 문화를 비교하기도 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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