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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제대로 즐기려면

입력
2003.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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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 입고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처녀 귀신, 입에 칼을 물고 피를 흘리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드는 귀신을 기대하고 있다면 구세대의 영화 보는 눈이다. 호러 영화의 문법을 새로 썼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의 특출한 발명'으로 불리는 '식스 센스' 이후 '반전'의 충격은 호러 영화가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 요소가 됐다.국내 호러 영화도 반전을 기본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공포 영화로 진화하고 있다. '장화, 홍련'으로 시작되는 한국 공포 영화 행진은 8월 중순부터 추석 무렵 정점에 달할 예정이다. '사인용 식탁' '아카시아' '거울 속으로'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 계단' 등이 잇달아 개봉한다. 여느 해보다 많은 공포 영화가 쏟아질 올 여름, 공포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사전 정보를 짚어 본다.

머리 나쁘면 공포 영화 못본다

"도대체 뭔 얘기야" "그럼 저 여자랑 다른 여자랑은 무슨 관계야" 영화 '장화, 홍련'을 본 '아저씨·아줌마' 관객은 약간의 분노마저 섞인 의문에 휩싸인다. 영화 보는 즐거움을 위해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반전'의 전후를 설명하는 화면과 함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도저히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한 관객이 적지 않은 것이다.

요즘 호러 영화의 승부수는 '반전'. '장화, 홍련'은 누군가가 귀신이었다는 첫 반전에 이어, 또 다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거울속으로' '사인용 식탁' '여우계단' 등이 모두 비장의 카드인 '반전'을 꽁꽁 숨겨두고 있다. 관객은 맥거핀(일종의 속임수) 효과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마지막에야 '진실'을 깨닫는다. 문제는 이 반전의 장치가 얼마나 설득력을 갖느냐 하는 점. '장화, 홍련'은 너무 급작스럽고, 많은 반전이 마지막에 쏟아져 관객들에게 100% 만족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족 안에 귀신이 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이제 공포 영화의 수사학은 나올 만큼 다 나온 상황이기 때문에 최근 공포 영화들은 정통 호흡의 공포 영화로 회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난도질하는 공포 영화가 줄 수 있는 자극이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다시 '귀신'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바로 그 '귀신'을 다루는 방식. 인간으로 보이지만 실은 귀신이라는 '식스센스' 식 설정이 호러 영화의 문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김영진씨는 "공포 영화는 점점 더 공포의 근원을 좀 더 가까운 존재로 끌어 당기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성에 사는 '드라큘라' 백작에서 옆 집에 사는 소심한 청년('싸이코')으로, 그리고 이제는 더 친근하게 가족 안의 귀신으로 점점 더 가까운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3편 '여우계단'(감독 윤재연)이 제작되고 있는 '여고괴담' 시리즈는 바로 학교 안으로 귀신을 끌고 들어온 영화. '아카시아'의 경우, 입양한 딸을 정점으로 공포가 형성된다. '장화, 홍련'은 그보다 더 가깝게 공포스런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귀신이란 자기 몸 속에 있다는 설정일 수도 있다.

내 안에 귀신?

넌 공포 영화 봤니? 난 액션 영화 봤는데.

시작부터 어느 곳에서 무엇이 튀어 나올 듯한 분위기는 올 공포 영화에는 없다. '사인용 식탁'은 전생을 보는 여자와 귀신을 보는 남자 사이의 신뢰와 불신을 심리 드라마 형식으로 풀어낸다. 때문에 언뜻 보면 전형적인 '호러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과감히 깨버린 영화적 설정으로도 보인다. '거울 속으로'(감독 김성호)는 4명이 살해 당하는 설정이 있지만 심령 스릴러에 액션을 혼합해 단순한 심령 공포 영화의 틀을 깨고 있다. 장르에 집착해서는 제 맛을 느끼기 어렵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장화, 홍련

‘움직이는 공포의 수채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빛과 그림, 소리가 개성 있게 어우러진뛰어난 공포영화. 그러나 미학적 스타일과 관객을 깜짝놀래가 할 반전에 치중한 나머지 깔끔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데서는 기대를약간 밑돈다.

수미(임수정) 수연(문근영) 자매가 서울에서 별장으로 내려온 날, 새어머니 은주(염정아)는 호들갑을 떨며 아이들을 반긴다. 그러나 아이들은 뜨악한 표정이다. 아버지 무현(김갑수)은 새어머니와 두 자매 사이의 갈등에수수방관하는 소심한 가장.

두 자매와 모녀는 살갗이 오므라들 정도의 심한 말을 아무렇게나 던진다.

“아빠가 다 해결해줄 것 같아? (아빠를) 불러봐.” 새엄마가 의붓딸을 협박하며 밉살스럽게 던지는 말이나, 아버지에게 “그 더러운 손으로 건드리지 마”라며 뿌리치는 딸의 말 한 마디가 섬뜩하다.마루 삐걱대는 소리, 잘못 울린 피아노 소리, 잠긴 문 여는 소리, 벽시계의 똑딱 소리, 바람 소리, 아이가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 등 알 수 없는소리가 집을 휘감는 동안 어둠이 서서히 내려 앉는다. 수미는 잠만 들면다리 사이로 피가 흐르는 귀신에 가위 눌리고, 기세 등등하게 자매 위에군림하려던 새엄마도 싱크대 밑으로 어른거리는 귀신에 넋이 나간다. 누가귀신이고 누가 산 사람인가?관객으로 하여금 공포가 비롯된 단서를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는 세련된 추리물 형식을 띤다. 그러나 알약, 조롱 안의 새, 피에 젖은 푸대 등을이용한 ‘맥거핀’(관객으로 하여금 엉뚱한 곳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의과다 사용으로 미처 관객이 능동적으로 추리 과정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머니와 새어머니의 교체라는 집안의 권력구조 개편이 낳은 비극이라는 걸 짐작할 수야 있지만, 곳곳에 드러난 이야기의 빈 틈을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멜로디로 공포 효과를 증폭시킨 이병우의 음악과, 설계도만 1,000장이 넘게 소비된 전남 보성의 ‘귀신들린 집’이 어우러져 빚는 아름다움이 조금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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