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런 생각]추미애가 옳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추미애가 옳다

입력
2003.06.12 00:00
0 0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 정파의 지루한 신당 논의가 지금의 민주당과 이념적으로 또렷이 구별되는 정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신당의 실천적 목표는, 그 '개혁적' 주창자들이 공언하듯, 여당의 전국정당화다. 지금의 민주당은 지역당, 구체적으로 호남당이어서 앞으로도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지역색을 말끔히 씻어낸 완전히 새로운 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 임하자는 것이 신당론의 취지다.민주당 내 신당 추진 세력의 별동대원이라 할 신기남 의원에 따르면, 신당 창당은 영남 의석의 절반을 얻기 위해 호남 의석의 절반을 버리는 것이다. 민주당 바깥에서 신당 건설을 풀무질하고 있는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에 따르면 신당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이 오로지 민주당 후보여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버려두고, 그가 민주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한 사람들과 노무현은 좋은데 민주당이어서 안 찍어준 사람들을 아우르는 정당"이다. 유의원이 버려두자고 한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 다수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일 터이고, 새로 아우르자고 한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는 영남 출신 유권자들이 많을 터이다.

놀랍게도, 신당 만들기의 최전위에 서 있는 이 두 '개혁적' 정치인의 실천 노선은 한나라당이 일관되게 실천해온 선거 전략, 곧 호남 표를 일부러 얻지 않음으로써 영남 표를 얻어왔던 전략을 원리의 수준에서 따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당세를 호남으로 넓히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호남에서 배척받아야만 영남에서 환영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남과 호남의 유권자 수가 크게 차이나므로 이것은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적 소수파를 희생양으로 삼아 지역적 다수파에게 영합하려 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지게 비윤리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개혁적'이라는 신당론자들이 이 아이디어를 베끼고 있다. 자신들이 간절히 원했던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호남 유권자들의 투표 용지에서 몹쓸 병균이라도 발견한 듯, 이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이다. 더 얄궂은 것은, 이들의 분별없는 호남 때리기가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이나 정균환 원내총무 같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후안무치한 배덕으로 마땅히 당 변두리로 밀려나야 했을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남 유권자들과 한나라당 사이의 정서적 유대가 워낙 튼튼해 이들 '개혁파'가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겠다. 특검법 공포로 영남 유권자들과 대북 대결주의자들의 반김대중 정서에 첫 '코드'를 맞춘 이래 현기증 나는 돌출 행보로 국내외 보수 세력과 거듭 '코드'를 맞추고 있는 대통령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 테니, 이 신당은 내년 총선에서 영남 유권자들의 지지로 전국정당의 꿈을 이룰지도 모르고, 더 나아가 원내1당의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아냥거리기에 바쁜 수구 언론도 낯빛을 바꾸어 진지하게 정부와 신당을 지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의 신당은, 이 당이 '진보정당'이 되리라는 박상천 의원의 악선전과는 정반대로, 지금 민주당의 개혁성에도 훨씬 못 미치는 보수정당이기 쉬울 것이다. 또 하나의 한나라당을 만들어서 이들 '개혁파'는 무슨 개혁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들의 분별 있는 개혁파 동료 추미애 의원이 적절히 지적했듯, 전국정당화는 개혁의 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정당의 이념에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포함한 시스템 개혁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지역 구도를 허물어야 한다는 추의원의 견해에 이들 '개혁파' 의원들이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박상천의 그름이 신기남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추미애가 옳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