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카고'와 뮤지컬 '시카고'를 비교하는 것은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둘은 가족처럼 같은 대본으로 이뤄졌지만 표현 방법은 영화와 뮤지컬의 특성 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 이어 뮤지컬 '시카고'가 한국에 온다. 현재 일본에서 공연 중인 런던 프로덕션의 투어팀이 7월2일부터 8월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시카고'를 올린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본 런던 프로덕션의 '시카고'는 우리 뮤지컬 팬들의 가슴을 적실 만하다.1,500여 석 규모의 런던 아델피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시카고'는 우선 최대한 간결하게 처리한 무대가 눈길을 끈다. 무대 중앙의 길이 10여m 에 4층으로 구성된 직사각형의 밴드 공간을 중심으로 무대전환 없이 뮤지컬이 이어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극이 음악과 춤을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무대 양편에 추가한 사다리 정도가 세트의 전부다. 배우들은 무대 양 끝의 의자에 앉아 있거나 무대 아래에서 밴드 공간으로 등장한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영화와 같다. 그러나 영국의 자존심일까. 브로드웨이 버전이나 영화에 비해 황색 언론의 천박함이나 물질만능주의, 법 제도의 모순 등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좀 더 강하게 표현된다. 대본의 차이라기보다는 연출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의 원작과 달리 신선함을 던지는 부분은 여기자인 메리 선샤인이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사실은 남자인 것으로 들통나는 장면. 변호사인 빌리는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는 대사를 던지며 선샤인의 가발을 벗겨버린다.
주인공인 록시 하트는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없고, 영화에서 유명한 기자회견의 꼭두각시 장면에서는 좀 더 익살스럽고 앙증맞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1970년대 원 안무가인 밥 파시가 연출한 검은 옷의 섹시한 여섯 여자 죄수와 섹시한 남자배우가 등장하는 교도소 장면의 안무도 뛰어나다. 멍청한 남편 에이모스의 비중도 늘어났다. 그러나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능글맞은 변호사 빌리 역이나 흑인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교도소장 마마 모튼의 느낌은 런던 프로덕션의 작품이 영화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브로드웨이 원작에서는 배우 노조가 강한 브로드웨이 특성상 마마 모튼 역을 흑인이 맡지만 런던에서는 백인이 맡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진수는 음악이다. 지휘자를 포함해 금관(트럼펫, 트럼본, 튜바)과 목관(클라리넷, 색소폰), 드럼, 두 대의 피아노, 각 한 대의 현악기(바이올린, 더블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15인조의 빅밴드 재즈 오케스트라는 1930년대 전성기의 시카고 스윙 재즈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다. 다만 당시에 쓰였던 클라리넷 대신 후대에 많이 쓰인 색소폰의 비중이 크다는 게 다르다. 악기를 상하좌우로 흔들며 한 손으로 뚜껑을 악기 입구에 붙였다 떼어 '우왕∼우왕∼' 소리를 내는 '와와 뮤트'를 음정의 흔들림 없이 구사하는 트럼펫 주자의 기량이 돋보이는 등 전체 앙상블이 매우 뛰어나 관객에게 라이브 재즈 카페에 온 느낌을 준다. 넉살 좋은 지휘자가 배우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극의 감초 역할을 한다.
이 뮤지컬은 현재 런던에서 1997년부터 5년 동안 좌석 점유율 85%를 기록하고 있고, 영국에서 6,000만 파운드의 수입을 올렸다.
모든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영화에 비해 뮤지컬은 매우 함축적 연기가 곁들여진 춤과 음악의 쇼이기 때문에 미리 영화를 보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02)577―1987
/런던=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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