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세, 준비 부족 등 우리 외교의 고질병이 크게 치유되지는 않은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에 한일관계를 '대범하게' 풀겠다고 했다. 쩨쩨하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강자의 아량인가 약자의 허세인가. 아무래도 앞의 것일 수는 없으리라.이런 관대한 우리 대통령을 일본은 망언과 유사법제화로 맞았다. 일본 집권당 정조회장이라는 사람은 '창씨 개명은 조선 사람들이 원해서 시작되었다'고 강변했고, 참의원은 전시대비 3개 법안을 대통령 방일 첫날에 통과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는 노 대통령과의 회담 3시간 뒤에 자위대법 개정안 준비를 지시했다. 한 마디로 한국을 우습게 보는 행위다. 저자세 외교에 대해 국내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했다.
노 대통령의 방미, 방일 외교에서 일관된 것은 상대방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입장을 최대한 죽이는 것이었다. 그래야 우방과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고 주체와 객체가 뒤집힌 생각이다. 한일 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최대 목표는 갈등 회피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제기해야 할 문제와 요구해야 할 조건과 지켜야 할 이익을 방기한다. 이 모두가 '바람직한 한일관계'와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해서다. 도대체 무엇이 목표이고 무엇이 수단인가.
정부의 이런 비주체적 행동은 사실 그 뿌리가 깊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는 재일동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헤아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한시바삐 일본에 동화되어 사라졌으면 한다. 외교부는 군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회한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골칫거리로만 생각한다. 독도, 아니 다케시마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고 우리의 '우국지사'들이 손가락 자르고 혈서를 써도 우리 정부는 변변한 대응책을 마련치 못한다. 교과서 왜곡 문제로 온 국민이 들끓어야 마지못해 주일 대사를 소환한다. 그리고는 금방 없었던 일로 해버린다.
그러면서 1998년 어업협정에서 보듯이 중요한 협상에서 제대로 준비도 못해 챙길 것은 못 챙기고 잃을 것은 다 잃는다. 이 협정으로 독도는 한일 공동관리 수역에 들어갔다.
'창씨 개명을 조선인들이 먼저 요청했다'는 말은 충격적이기는 하나, 상당한 진실이 거기에 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지만 앞장서서 갖다 바친 사람들이 우리의 '지도자'들이었다. 과거사가 바로 현재사이고 이것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한일관계를 괴롭힐 것이라는 역사의식의 기초도 없는 '지도자'들을 볼 때, 눈앞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몇 억 달러에 과거사를 팔아 넘긴 한일회담 대표들을 볼 때,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독도는 우리 땅' 노래도 금지하고 정부 문서도 공개할 수 없다는 관리들을 볼 때, 그 당시에 친일파 아닌 사람들이 어디 있었느냐고 큰소리치는 기득권층을 볼 때, 창씨개명을 애걸하는 유식한 조선인들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군사화에 시비 거는 것은 소아병이라는 망언이 보수정당 대변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과거사 문제는 일본의 문제일 뿐 아니라 바로 우리 문제다. 일본은 제 하고 싶은 일 다 하건만,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를 해치면 안 된다며 미소만 지으니, 이것이 뤼신이 말한 '정신 승리법'일까? 아무리 짓밟혀도 정신만 이기면 된다는?
우리 정부가 때때로 보이는 터무니없는 관대함이나 허풍. 이것은 약자의 허세일 뿐이다. 저자세와 허세는 같은 부류다. 한일 관계는 대범하게 풀어서는 안 된다. 소심하게 꼼꼼히 따져야 한다. 같은 일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살펴 보라.
김 영 명 한림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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