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봉비평문학상을 받게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여간 죄송스러운 것이 아니다. 월탄은 팔봉의 글에 대해 "세련될 대로 세련된 그 글은 주옥을 꿰어 놓은 것과 같다. 혼절되도록 쓰린 혼의 통곡은 구소(九□)에까지 사모치는 듯하다"고 하였거니와 사실에 있어서 팔봉이 폭 넓고 균형 있는 비평가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자료는 허다하다. 유희본능과 실용본능을 함께 인정하여 포섭하는 태도를 보거나, 로망 롤랑과 앙리 바르뷔스의 논쟁에서 두 사람의 차이점보다 같은 지향점을 강조하는 시각을 보거나, 전집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금세 드러나는 건강한 회의를 보거나 문학과 민중에 대한 팔봉의 믿음은 부럽기 그지없다. "참말로 나는 무엇을 하면 좋고 무엇을 생각하면 옳을까?"라는 그의 질문을 나는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사는 것인가!대학시절에 소설을 썼는데 신춘문예에 서너 번 응모했다가 떨어져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 1972년에 김현 선생의 주선으로 이문구 선생이 편집하던 '월간문학'의 신인상을 받고 평론을 쓰게 되었으나 글 쓸 일만 있으면 책상 앞에 가기 싫어 술 마시고 나도는 버릇 때문에 아직까지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만한 평론 한 편 써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 때 소설을 지어본 경험을 내심으로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지금은 그 제목조차 잊었으나 '사상계'에서 정명환 선생의 재미있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남아있다. 몇 년 동안 공들여 소설을 써온 사람이 있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그가 쓰고 있던 소설보다 훨씬 잘 쓴 소설을 읽고 절망하여 쓰던 소설을 불사르고 자살하려고 결심하였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친구들이 모이는 카페에 갔더니 마침 그가 읽은 그 소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크게 놀랐다. "아니 그 소설에서 고작 저런 것밖에 못 읽었다니!" 그는 자살을 포기하고 평론가가 되었다.
나는 평생토록 글을 찾아 다니지 않고 글을 피해 다녔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구실만 된다면 무슨 일이거나 맡았다. 고려대에서는 농구부장을 4년이나 하면서 그 동안의 모든 시합을 따라다녔다. 읽는 것 따로, 쓰는 것 따로, 가르치는 것 따로 해온 것도 글에 전적으로 공들이지 못하게 방해한 결과가 되었다. 20년이 넘도록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읽어왔으나 나는 그들의 방법을 글 쓰는 데 적용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비평가로서 지식을 자랑하거나 교훈을 제시하는 대신에 질문하고 모색하고 반성하는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앞으로도 글을 지금보다 더 잘 쓸 자신은 별로 없으나 팔봉비평문학상의 의미를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앞으로 지금보다 더 정신의 긴장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고려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