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을 기다리던 중, 한 신문 칼럼에 눈이 갔다.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 등 무분별한 반미'를 우려하면서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므로, 한미공조 강화의 실용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낯설거나 눈에 뜨인 것은 아니었다. 그 글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그 글이 인용한 말 때문이었다.필자의 의도에 따라 생략되거나 과장된 것이겠지만, 그 글에 인용된 바에 의하면, 방미 기간 대통령을 수행했던 사람에게 어느 미국인이 "장갑차에 사망한 여중생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데, 서해교전에서 사망한 장병의 이름도 아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 다른 미국인은 기자에게 "왜 한국인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서해교전에 관해서는 북한에 항의하거나 북한 인공기를 찢는 시위는 하지 않으면서 미군의 우발적인 사고만 문제 삼아 성조기를 불태우고 찢느냐"고 따졌다고 했다.
그들 질문 속에 두 명의 여중생과 서해 교전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죽음은 '우방 군대의 우발적인 사고로 사망한 소녀'와 '적군이 고의로 죽인 병사'로 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 여중생의 사망 1주년을 추모하는 행사는 '현실을 모르는 무분별한 반미'로, 그리고 겨우 봉합된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순수하지 못한 행사로 여겨지고 있다. 과연 그런가.
적어도 내게 두 죽음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며, 한반도의 북쪽(출퇴근 회담을 보라, 도라산역에서 개성까지 불과 30분이라니!)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대상으로 고립되어 있는 우리 현실로 말미암은 똑같은 비극의 양면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과 서해교전을 기억하는 것은 똑같이 "평화롭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 반대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서해 교전을 거듭 언급하지 않는 것이 그 죽음의 무게를 잊었거나 슬프지 않기 때문이 아니고, 미국에는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바로 앞바다에서 일어난 교전의 현실에 눈을 감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다만 '적에 의한 죽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이, 위태로운 우리 현실을 푸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해교전은 남북문제를 힘이 아니라 오직 평화롭게 긴장을 완화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함을 일깨워준 것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패권국가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가 아니라 민족 차원의 자주적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는 교훈으로, 나아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의 목표를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주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민족 차원의 전략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이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주적 지위 설정이 전제되어야 하고, 촛불 시위가 추구하는 바도 바로 이러한 새로운 관계 설정이자 평화적 해결로 미국을 견인하는 노력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촛불 시위나 성조기를 태우는 것만으로 자주적 한미관계를 이룬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그것을 무분별한 반미로 매도하거나 외교의 걸림돌이라며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본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 북한을 전쟁 대상으로 보면서 한편으로 그 남쪽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수정할 리 없다는 것은(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매일 밤 흥청망청 술을 먹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누구나 알고 있지 않는가?
더운 날씨에 다니는 것을 진짜 싫어하지만, 나는 이번 금요일 저녁 광화문 거리에 나가고 싶다. 우리 지도자가, 이런 우리를 걱정하지 않고 든든하게 생각하며 이렇게 말해주기를 소망하면서. "이만큼 성숙한 우리 국민들이 진심으로 평화를 바라고 있다, 당신들도 당당하고 평화롭게 함께 갈 수 있는 길에 나서달라."
김 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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