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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5>권력의 균열 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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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비화 - 대통령의 사람들]<15>권력의 균열 ⑫

입력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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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개헌 문제가 간단없이 불거지던 1999년 3월4일, 청와대 김정길(金正吉) 정무수석은 '상반기 중 내각제 논의 유보'를 꺼냈다. 김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총리가 상반기에는 내각제 공론화를 하지 않기로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김 수석의 이 말은 정권 출범 후 내내 DJ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내각제 개헌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됐다. 그 때 이를 전해들은 JP는 "김 수석이 그런 얘기를 했어"라는 한마디만 했을 뿐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JP의 태도는 "반박하지 않은 것은 합의를 시사한다" "JP의 퉁명스런 어투는 합의가 없음을 의미한다"는 등 엇갈리는 해석을 낳았다.

지금도 이 부분은 미스터리다. DJ와 JP가 이미 상반기 중 내각제 논의 유보에 합의해놓고 김 수석을 통해 분위기 조성을 시도한 것인지, 아니면 김 수석이 냉가슴을 앓고 있는 두 사람을 대신해 공론화를 시도한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DJ를 가까이서 보필한 한 비서는 "김 수석의 독자적인 플레이였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발언이 있고 나서 그 날 오후 DJ가 청와대 본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김 수석도 보고를 위해 함께 탔다"며 "그 자리에서의 대화가 짜고 치는 플레이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이 비서가 전하는 당시 대화 내용. "대통령은 김 수석이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런 말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추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오히려 대통령은 환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김 수석은 '괜찮습니다. 총리도 크게 언짢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은 '그래도 총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은 김 수석이 그런 말을 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김정길 전 수석의 증언.

"내각제를 놓고 DJ와 JP가 서로 말을 못하고 있었다. DJ는 하고 싶지 않았고 JP는 원내 의석 때문에 개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속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할을 하기로 하고 DJ에 의중을 물었다. DJ는 고민이라고 했다. JP를 찾아갔다. 자민련 의원들이 하는 것처럼 들볶는 식으로 개헌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경제가 어려운데 조금 지나서 논의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JP가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상반기 중 논의 유보 정도는 받아들이겠구나 생각했다."

김 수석은 발언 다음날인 5일 총리실로 JP를 찾아가 사과를 하지만, JP는 너털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김 수석은 "공동 여당간 내각제 갈등이 수위를 넘은 것 같아 이를 진화하려고 한마디 했다"고 해명하자 JP는 "괜찮다"며 크게 웃었다. 김 수석이 이어 "감(感)을 전제로 의중을 넘겨 짚어 죄송하다. 하지만 총리의 대소(大笑)를 보니 제 감이 맞는 모양"이라고 말하자, JP는 다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내각제 논의 유보가 공식화하지 못했고,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에 신경전이 계속됐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4월 7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공동 정권이 균열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위기를 계기로 DJ와 JP는 9일 청와대에서 단독 회동을 갖고 "8월까지 내각제 논의를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남는 의문점은 DJ와 JP가 내각제 논의 유보에 대해 언제, 어떻게 묵시적 합의 내지는 교감을 했느냐 이다. 당시 내각제 추진에 가장 열성적이었던 한나라당 김용환(金龍煥) 의원은 '1월 5일의 독대'를 내각제 좌절의 시발점으로 지목했다.

1998년 12월말까지만 해도 DJ와 JP는 내각제 개헌을 놓고 한치 양보없는 설전을 주고 받고 있었다. 대선 1주년 기념식인 12월 18일 JP는 "공동 여당의 도덕적 기반은 신의"라며 개헌을 강도 높게 요구했고 DJ는 "내각제 약속은 살아있으나 여당 내에서 경제가 어려우니 시기 조절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다"고 다른 말을 했다.

김 의원의 증언.

"99년 들어 DJ와 JP는 독대를 했다. 그 전에는 꼭 김중권(金重權)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그 때 독대에서 JP가 양보의 메시지를 DJ에 비친 것으로 안다. JP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진해 모두 실패했다는 말을 DJ에 했다'고 하더라. 개혁은 시간이 걸리지만 개방은 한번 터지면 조절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내각제라는 단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 실패한다는 얘기 아니냐. DJ가 어떤 사람인가. 그 말 한마디에 '무리하게 내각제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JP의 메시지를 읽은 것이다."

김 의원은 더 나아가 "JP는 진실로 내각제를 추진할 의사가 없었고 총리라는 2인자의 자리에 안주하고 싶어 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의 계속되는 얘기.

"DJP 공조의 전제인 내각제 개헌 합의는 대선 1년 전인 96년 11월1일 DJ와 나의 목동 회동에서 사실상 결론이 났었다. 그 자리에서 DJ는 내각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 이전 경북 현불사에서 DJ, 설송 스님, 내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밥 한 번 사주십시오'라고 말하자 DJ는 '그렇지 않아도 만나려고 했다'고 하더라. 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JP에 보고도 하지 않았는데 얼마 후 한광옥(韓光玉)으로부터 'DJ가 만나자고 한다'는 전갈이 왔다. 그래서 JP에 보고하고 지침을 요청했는데 JP는 '우리 당 입장은 당신이 잘 아니 알아서 잘 하라'고 했다. 그리고 목동에서 만나 DJ에게 '이번이 4수(修)인데 JP와 손을 잡아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 그러려면 내각제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 DJ의 동의를 얻어냈다.

99년에도 나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까지 두 차례(1월, 3월) 만나 내각제를 하자고 설득했다. 이 총재는 내각제가 절대 안 된다는 것은 아니고 수용할 수도 있지만 JP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 의원의 말은 JP가 진실로 내각제를 하려 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JP가 마음 속으로 내각제를 할 생각이 없으면서 겉으로만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김 의원도 모르는 사실로, JP는 99년 초반에 이회창 총재를 비밀리에 만나 내각제 협상을 한 적이 있다. 총리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용채(金鎔采) 전 의원은 "JP와 이 총재의 회동이 3차례 정도 있었다"고 증언했고 이 총재의 측근인 신경식(辛卿植) 한나라당 의원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회동은 1번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용채 전 의원의 얘기. "JP는 비밀 회동에서 이회창 총재의 의중을 떠보았다. 그러나 이 총재는 내각제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총재는 '우리가 내각제 야합이라고 비난해놓고 다시 자민련과 내각제 밀약을 하면 설 땅이 없다'고 말했다. 개헌에 동의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JP는 많이 실망했다."

신경식 의원의 회고. "이 총재는 내각제 의사가 없었지만 JP로부터 다른 협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서 만났던 것이다. 이 총재가 다음 대선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굳이 내각제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례도 있다. 97년 대선 국면에서도 JP는 한편으로 DJ와 공조 협상을 벌이면서도 당시 대통령인 YS에게도 '임기 말 내각제 개헌'을 제안했다. JP는 자민련 이동복(李東馥) 의원을 밀사로 내세워 권영해(權寧海) 안기부장을 만나게 했다.

이동복 전 의원의 증언. "자세한 얘기는 하기 어려우나 97년 8월쯤으로 기억한다. YS도 JP의 제의를 받고는 내각제를 시도할까 생각했다. 1주일 정도 그런 상태가 계속됐다. 협상이 내밀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YS는 결국 포기했다. DJ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부담은 자신이 모두 지고 DJ에 공격의 빌미를 줄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런 증언들을 보면, JP가 일찌감치 내각제를 포기하고 총리라는 자리에 안주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YS와의 내각제 거래 시도는 JP의 내각제 의지가 포장용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DJ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내각제를 추진하려고 이리 저리 궁리를 하고 시도를 했으나 현실적인 힘의 한계 때문에 주저앉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김용환 의원처럼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일전을 불사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모험도 DJ와 이회창 총재가 외면해버리면 JP의 몰락으로 결론지어졌을 가능성도 많았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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