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메트로 피플/ 지하철공연으로 인기 "잉카엠파이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트로 피플/ 지하철공연으로 인기 "잉카엠파이어"

입력
2003.06.11 00:00
0 0

9일 오후4시가 조금 지난 시각. 서울 지하철6호선 안암역에 내린 승객들은 역사에 울려 퍼지는 낯선 악기와 노랫가락에 귀가 쫑긋해졌다. 남미 악사 3명이 쏟아내는 애절한 화음이었다. 지하1층 계단 입구의 허름한 무대지만 생소한 악기를 불고 두들기는 이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지긋이 눈감은 얼굴엔 진지함이 가득하다.역 구내를 타고 도는 열정의 멜로디에 행인들이 하나 둘 발걸음을 멈췄다. 첫 곡 연주가 끝날 무렵에는 관객이 20여명으로 늘었다.

"안데스의 음악을 들려주러 남미에서 온 3인조 '잉카엠파이어(Inca Empire)' 입니다."

지하철 공연 전문기획사 레일아트(www.railart.org) 전흥철 공연팀장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히∼, 하∼"하는 활기찬 시작 음과 함께 흥겨운 음악이 다시 이어졌다.

수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 하러 가던 최인경(고려대 2년)씨는 "음악에 콘도르의 날갯짓과 안데스 꼭데기의 청명한 하늘이 묻어있는 것 같다"며 걸음을 뗄 줄 몰랐다.

40분간의 1부 공연이 끝나자 '잉카엠파이어'의 멤버인 에콰도르 출신의 올란도(30)와 페루 출신의 하비엘(35), 라파엘(33)은 잠시 숨을 골랐다.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리더 올란도는 "한국에서 따로 활동하다가 1999년 청주비엔날레 초청 공연에서 처음 만났고 그 뒤 제주 섬페스티벌 등 많은 이벤트에서 얼굴을 익히면서 의기투합,팀을 결성했다"고 말했다. 원래 그룹 이름은 '타완틴수요(Tahuan Tinsuyo)'. 잉카의 땅(제국)을 뜻하는 안데스 원주민 언어다.

이날 엄마와 함께 공연을 구경한 진아(5)가 이들의 악기에 관심을 보이자 페루 화산지대 외딴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 하비엘과 라파엘은 서툰 한국말로 악기의 종류와 유래 등을 설명했다.

팬플룻 모양의 산포니아(Zamponia), 단소 모양의 케나(Quena), 만돌린을 개조한 안데스 전통기타 차랑고(Charango), 짐승의 발톱을 묶어 만들었다는 차차스(Chachas), 남미 전통 북 봄보(Bombo) 등 색다른 악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이들은 단순히 안데스 음악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내외 대중가요를 안데스 분위기를 살려 연주하는 것이다. 이날 2부, 3부 공연에서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 등을 남미 악기에 맞게 변주해 소개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 유럽 등지를 돌며 음악을 연주했던 올란도는 "한국인들은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주기 때문에 연주하는 우리도 흥이 난다"며 "앞으로 지하철 등지에서 더 많이 공연해 안데스 음악을 한국인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난히 열기가 달아오른 이날 공연에서 끝내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올란도가 솟구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케나를 불어버린 것. 케나는 두 손으로 연주하는 악기인데 그는 지난달 중순 왼팔 겨드랑이 동맥, 힘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왼손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고 직후 팬들이 입원비와 헌혈증을 모아 수술과 치료를 도왔고 올란도는 그에 보답한다며 2주 전부터 깁스 상태로 무대에 올랐었다. 그때만해도 산포니아 등을 한 손으로 연주했는데 깁스를 풀고 가진 이날 공연에서 완치되지 않은 왼손을 놀려 그만의 현란한 케나 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케나 연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동료들은 연주가 끝나자 그의 팔을 만지고 격려했으며 그 같은 사정을 진행자의 설명으로 전해들은 관객들은 뒤늦은 박수를 보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가 라스트 곡으로 메아리쳤지만 관객들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고 끝내 3번의 앵콜이 이어졌다. 가슴을 파고드는 음과 머리 뒤끝을 울리는 리듬, 시원(始原)의 안데스 소리가 초여름 저녁 안암역을 떠나기 아쉬운 듯 마냥 맴돌았다.

지하철에서 공연한 지 1년 6개월이 되면서 팬클럽이 조직되고 인터넷 카페까지 생겨날 정도로 이들은 이미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레일아트의 박종호 대표는 "지하철역이 거리의악사들 때문에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잉카엠파이어는 낯선 안데스 음악을 우리 옆에서 들려주는 소중한 음악인"이라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