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는 사람보다 동물이 잘 발견한다. 그러나 약수를 몰래 즐기던 동물이 사람의 눈에 띄면 이제 그 약수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약수의 발견과 관련한 동물은 사슴, 노루, 멧돼지 등 대부분 깊은 산에 들어가 사는 야생의 동물들이다.그런데 사람이 기르는 가축이 발견한 약수가 있다. 강원 양구군 동면 후곡리의 후곡약수다.
이 지역은 과거 넓은 초지가 많아 소를 방목했다. 만성 설사병을 앓아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소가 있었다. 어느 날 다래덤불이 무성한 계곡에서 솟는 샘물을 마시는 것을 주인이 봤다. 아무거나 먹고 큰 탈이 날까 봐 소를 외양간에 가뒀다. 이튿날 보니 소가 설사를 멈췄다. 이상히 여겨 덤불을 거두고 샘물을 떠먹어보니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1880년께의 일이니 120년 전 이야기다.
후곡약수는 세상에 나온 사연에 걸맞게 위장병 전문 약수로 이름이 높다. 철분과 탄산이온, 규산이온이 녹아 있다. 약수 특유의 비릿한 맛과 톡 쏘는 느낌이 강하다. 이 약수를 장복해 위장병을 치료한 사례가 많다.
그중 1930년께 양구 지역의 대지주 손만재씨의 어머니 이야기는 유명하기까지 하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방은 물론 양방까지 시도했지만 손씨 어머니의 위장병은 악화하기만 했다. 마지막 방법으로 후곡약수 인근에 방을 얻어 약수의 장복을 시작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딱 5일만에 손씨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
약수는 지반보다 약 1m 낮은 땅에서 솟는다. 약수 구멍 2개가 나란히 나 있다. 철분이 산화해 바닥은 온통 붉은 빛이다. 색깔과 모습이 평범하지 않다. 뭔가 영험한 기운이 스며있는 것 같다.
약수가 있는 대암산은 고층습지로도 유명하다. 천연기념물 제246호. 해발 1,300m에 있는 고층습지는 평지와는 전혀 다른 생태계를 갖고 있다. 역시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이 습지의 물이 산속으로 스며 풍부한 땅 속 영양분을 훑은 뒤 약수라는 이름으로 산 아래에서 솟는 것은 아닐까.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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