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간판 역사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을 21일 종영하고,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진행하는 '다큐멘터리 인물현대사'를 신설키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은 갖가지 '정치적' 의혹을 제기하며 '역사스페셜' 종영 반대 운동에 나섰다.KBS PD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기획제작국이 제작한 '역사스페셜'은 1998년 10월17일 첫 방송 이후 4년 반 동안 조선시대까지의 역사 수수께끼를 흥미롭게 다뤄 호평을 받았고,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지난달부터는 '발굴! 정부기록보존소'란 부제를 달아 기록보존소 자료를 바탕으로 현대사 비화를 소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박정희 정권 당시 수도 이전 프로젝트, 베트남전 파병의 진실 등을 다뤘다. 반면 27일 첫 방송하는 '인물현대사'(금 밤 10시)는 광복 이후 주요 인물들의 삶을 통해 격동의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교양국이 제작한다. 87년 6월 민주항쟁 때 숨진 이한열씨의 어머니 배은심씨, 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 지도부 윤상원씨 등을 우선 다룰 예정이다.
KBS측은 "'인물현대사'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처럼 현대사의 주요 이슈를 다루는 개혁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사내의 요구에 따라 기획했는데 '역사스페셜'이 현대사로 방향을 틀어 내용이 중복될 소지가 있어 내부 논의 끝에 종영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결정에는 정부기록보존소의 자료가 당초 기대와 달리 크게 새로운 내용이 없고,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데 오히려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역사스페셜'이 새 단장한 지 한 달 만에 막을 내리는 데다, '인물현대사'에서 초반에 다룰 인물이 이른바 '개혁 세력'에 편중된 점 등을 들어 인터넷 게시판에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글이 오르고 있다. 특히 일부 시청자는 '인물현대사'가 현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인 '노사모' 출신의 문씨를 진행자로 내세운 것이 '역사스페셜' 폐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과 함께 '색깔'이 너무 뚜렷한 문씨가 논란이 많은 현대사 인물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룰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한편 KBS 내에서는 파워 게임의 결과라는 해석이 유력하게 나돈다.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단행된 인사에서 '인물현대사' 기획에 간여한 이원군 교양국장과 장해랑 책임프로듀서가 각각 편성본부장과 사장 비서실장으로 영전한 반면, '역사스페셜'을 만든 남성우 기획제작국장과 서재석 책임프로듀서는 각각 심의실장과 제작위원으로 밀려났다. 한 PD는 "'역사스페셜'이 그동안 사내외에서 요구가 많았던 현대사를 외면하고 고·중세사를 주로 다뤄온 데 대한 신임 경영진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KBS측은 이에 대해 "'인물현대사'는 올 초에 기획된 것으로, 이번 결정은 정 사장의 취임이나 인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KBS는 93년 이후 '다큐멘터리 극장' '역사의 라이벌'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등 계속 간판을 바꿔 역사와 인물을 다뤄왔다. '인물현대사'의 신설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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