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인간사회를 삭막하게 한다고 하지만, 엊그제 정보통신부로부터 '올해의 정보가족'으로 선정된 구동관(37·농업기술 지도사)씨 가족에겐 이런 이야기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초등학생인 현석이(12)와 다솜이(9), 그리고 맞벌이하는 아내 이정선(37·공무원)씨까지 네 식구가 전국을 여행하고 옹기종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홈페이지 '초록별 가족의 여행(www.sinnanda.com)'은 이상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본보기를 보여준다."아빠 사랑해"라며 구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딸 다솜이에게 "나도 다솜이 현석이 사랑해"라고 답신을 보내자 "내가 보냈는데 왜 현석이도 사랑한다고 보냈어?"라며 질투하는 귀여운 다솜이의 모습, 현석이가 그동안 연습한 피아노 실력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려 가족음악회를 개최하는 모습 등 홈페이지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매월 한 번씩은 가족 모두가 여행을 떠나고 여행기를 남기는데, 정보도 풍부하고 읽을거리도 많아 가족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계획을 세우기 전에 반드시 방문하는 필수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하루 방문객은 3,000명을 넘고 방명록에는 따뜻한 가족의 모습에 감동했다, 부럽다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러나 구씨는 "우리는 부부싸움도 하고 자녀와 다투기도 하는 평범한 가족일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홈페이지는 추억의 앨범 같은 것이죠.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웃으면서 찍잖아요. 홈페이지에도 즐거운 이야기를 주로 적게 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생 누나가 가입한 산악회를 따라다닐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던 구씨가 가족여행 홈페이지를 처음 만든 것은 1999년. 맞벌이 부부라 평소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구씨는 현석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가족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쌓아 온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호응이 좋아서 2000년부터는 아예 도메인도 신청하고 웹호스팅도 받아 독립 홈페이지를 만들었죠." 홈페이지 만드는 법은 구씨가 독학으로 배웠고, 유지·관리는 온 가족이 함께 해 오고 있다.
"현석이가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은 숙제를 하는 것 같아서 싫다면서도 인터넷 게시판에는 자주 글을 올린답니다. 여행지에서 관찰한 동식물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올리기도 해요." 무엇보다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교사가 될 준비를 하는 중이라는 어떤 이가 방명록에 남긴 글을 보았을 때였다. "그는 그동안 사회와 가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는데 우리 가족 신문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화목한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썼는데, 그 글을 읽고 '정말 홈페이지 만들길 잘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록별인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초록별 가족'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구씨는 강원도 인제군의 진동계곡에서 가족과 함께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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