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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김홍도 단원도(檀園圖) 1785년 135x78.5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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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그림에 담긴 국악]김홍도 단원도(檀園圖) 1785년 135x78.5cm 개인소장

입력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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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가 거문고를 탄다. 그런데 김홍도의 눈길이 앞 쪽으로 마주 앉은 사람에게 쏠려 있다. 아무래도 자신의 거문고 연주보다는 앞의 사람에게 귀를 빼앗긴 듯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김홍도는 앞에 앉은 이의 노래를 들으며, 그 노래에 거문고를 '뚱, 뚱' 울려 반주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윽한 거문고 소리에 어울린 느릿한 노래의 여운이 감돌 듯한 이 그림 속의 초여름 풍경은 한가롭기만 하다. 오동나무 잎새가 무성하게 자란 초여름(1781년 4월). 단원은 괴석과 연못으로 조촐하지만 멋스럽게 잘 꾸민 초옥(草屋), 단원(檀園)에서 모처럼 반가운 손님을 맞아 '우아한 모임'(雅會)를 가졌다. 그림 중에 부채를 들고 기대 앉은 담졸 강희언과 그 옆에 앉아 한 팔을 살짝 올린 자세로 앉아 노래를 부르는 창해옹 정란. 단원은 이날 풍류를 알고 아취(雅趣)를 즐길 줄 아는 진객(珍客) 두 분을 조붓한 초옥 마루에 모시고, 직접 거문고 줄을 골랐다.거문고를 짚고 한 번 퉁기면 소리가 '뚱'하고 난다. '뚱' 하고 울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직도 거기에 소리가 남아 끝없이 여운이 감돈다. 그러면 거문고의 여운을 손으로 눌러서 여러 가지 작고 미세한 소리의 변화를 만드는 농현(弄絃)을 한다. 소리로 하나의 파문을 일으키며 꿈틀대는 거문고 소리. 두 손님은 단원의 손길이 움직일 때 마다 초옥 마루에 꿈틀대고 퍼지는, 그 살아있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이 누리는 멋에 스스로 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초옥 주인의 거문고 소리에 취한 손님이 이번에는 노래를 자청하고 나서니, 단원은 기꺼운 마음으로 손님의 노래에 거문고 음을 맞추고 있겠지?

모르긴 해도 단원은 이날 음악으로 나누는 마음의 대화에 어지간히 흔쾌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멋에 취하는 즐거움의 감동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법이다.

이 '우아한 모임'이 열린 지 5년 후, 그림 속에서 부채를 들고 있던 강희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단원 자신은 처지가 어렵게 되어 타지의 객관(客官)에 머물고 있을 때, 우연히 그림 속에서 노래하던 창해옹을 만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과 그림에 쓰인 화제(畵題)와 발문(跋文)을 읽으면, 나도 누구와 이렇게 추억이 될 한가롭고 멋진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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