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방산업체인 영국의 BAE 시스템스가 올해 말 미국 보잉사와 합병할 것으로 알려져 1990년대 몰아쳤던 방산업체의 인수합병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특히 두 업체의 인수합병은 경쟁관계인 미국―유럽 간의 사실상 첫 인수합병이란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합병이 계획대로 성사된다면 보잉은 록히드 마틴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방산업체가 된다.영국 선데이 텔레그라프는 8일 "BAE가 경쟁사인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과의 합병을 계획하고 있다"며 "BAE는 합병과 관련해 패트리셔 휴위트 통산장관, 제프 훈 국방장관과 논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마이크 터너 BAE 최고경영자(CEO)도 "시장과 돈, 기술이 있는 미국시장으로의 편입은 불가피하다"며 "필요하다면 인수합병 과정에서의 '대등한 조건'도 포기할 수 있다"는 적극적 의사를 개진했다. 딕 에반스 BAE 회장은 다른 업체에 비해 훨씬 종속적인 입장에 처하더라도 합병업체로 보잉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으로 보면 통합타격 전투기(JSF) 프로그램에 BAE와 함께 참여하고 있는 록히드 마틴이 합병 상대로 더 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나 BAE는 보잉이 주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제,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민간항공기 에어버스의 지분 등을 고려해 보잉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BAE의 시가총액은 74억7,000만 달러인 반면, 보잉은 315억4,000만 달러, 록히드 마틴은 227억4,000만 달러, 제너럴 다이내믹스는 147억7,000만 달러이다.
합병소식이 알려지자 에어버스의 유럽 컨소시엄이자 80%의 지분을 갖고 있는 EADS는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민간항공기 분야에서 보잉과 생사를 건 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에어버스의 지분 20%를 갖고 있는 BAE가 보잉에 흡수된다면 항공기 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필립 카뮈 EADS CEO는 이 때문에 BAE가 합병을 강행한다면 에어버스 지분을 사전에 정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합병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라크전에서 끈끈한 동맹관계를 과시했던 양국의 정치적 유대감이 배경으로 작용했으며, 한편으로 몸집 불리기에 한창인 유럽대륙의 방위산업 재편에 적지않은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방산업체간 인수합병은 지난해 12월 미국의 노드롭 그루먼이 당시 업계 8위였던 TRW를 78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으며 96년 12월에는 보잉이 맥도널 더글러스를 140억 달러에, 같은 해 1월 록히드 마틴이 로럴을 90억 달러에 사들였다.
록히드 마틴, 보잉, 레이시온으로 대표되는 '빅 3' 체제는 당시 미국 정부가 유도한 합병의 산물이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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