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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製靴의 달인 노인들 뭉쳐 "장애인 구두" 만들기 새보람/회춘한 구두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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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製靴의 달인 노인들 뭉쳐 "장애인 구두" 만들기 새보람/회춘한 구두인생

입력
200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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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참 잘 나갔다. 구두 목형을 뜨는 일에서부터 가죽을 무두질하고 구두밑창까지 일일이 손으로 박음질을 해서 만들어내던 수제화의 시대, 구두 기술자들은 명동거리에 척 나서면 구두점 마다 모셔가지 못해 안달이었고 중매쟁이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80년대를 넘기면서 수제화의 시대가 끝나고 기계식 대량생산이 자리를 잡자 수제화 기술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다고 자족할 수 있으련만 육순을 넘긴 구두쟁이의 손은 쉬는 법을 몰랐다. 1997년 가을 장애인 구두를 만드는 미래재활제화연구소를 열면서 강학수(73) 대표를 비롯한 할아버지 5인방의 구두인생은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배운 건 구두기술 밖에 없는데, 누가 수제화를 찾아야지…. 그런데 어느날 한쪽 발이 5㎝ 정도 짧은 청년이 지팡이를 짚고 와서 구두를 맞춰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해줬는데 이 청년이 지팡이를 내던지고 그냥 걸어나갔어. 22년만에 처음 구두 신어본다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때 생각했지. 그래 내가 가진 기술로, 제대로 된 신발 한 켤레 못 신고 고생하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해보자. 늘그막 인생에 그만한 보람이 있겠나."

당시 강 대표는 구두업계에서 일하며 알게된 이재양(63)씨를 설득해 암사동의 한 장애인단체 건물 지하에 구두점을 냈다.

개업 한달만에 IMF환란이 터져 고생도 했지만 차츰 입소문을 타고 장애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 두명이 시작한 사업은 강 대표의 동생인 피혁전문가 강학근(68)씨, 미싱사 박정희(65)씨, 본인 자신이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구두 마무리 전문가 손기선(61)씨 등이 합류하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당초 수익보다 보람을 찾는데서 시작한 일이라 서울시내에서는 월세를 감당하기 벅찼고 결국 3년전에 경기 하남시의 재개발지역 가건물로 작업장을 옮겨야 했다.

장애인 구두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한다. 한쪽 발이 짧은 사람을 위해서는 일종의 키높이 구두처럼 겉보기엔 양쪽 신발 구두굽이 똑같이 보이지만 짧은 발쪽에는 안에 특수밑창을 덧대 짧은 발을 지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뇌성마비 환자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틀어진 발은 계속 발이 돌아가는 것을 막도록 보정하는 기능을 넣어야 하며 발 길이가 3㎝ 정도로 아예 없다시피한 발은 발등과 발굽을 만들어서 가능한 겉모양이 정상인과 비슷해 보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다양한 발을 보다 보면 발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한다.

발에 커다란 혹이 두개나 붙어있는 아이, 발이 돌아가다 못해 발굽이 앞쪽으로 와있는 사람, 갓 태어난 아기인데 발이 돌아가서 보정용 구두를 만들어달라고 오는 부모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이재양씨는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은 신발 한번 제대로 못 신어보고 평생 보냈다. 일반인들이 신는 신발 신고 걸음이나 제대로 걸을 수 있었겠나. 그래도 내가 이 기술이 있어서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들의 발은 표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마다 발의 목형을 뜨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맞춤 수제신발인 셈이다. 또 모든 신발은 반드시 가봉을 거쳐서 장애인들에게 최상의 착용감을 주는 데 주력한다.

수제인 만큼 가격도 세다. 최상급 가죽신발이 보통 15만∼20만원선, 아주 특이한 신발은 35만원까지도 간다. 할아버지 5인방의 구두솜씨는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이 퍼져 지금은 거제도, 광주, 부산 등 지방에서도 주문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에는 중국교포 한 사람이 곧 영구 귀국한다며 중국에 가서 신겠다고 가죽구두 두켤레를 주문하고 가기도 했다.

"내 나이에 그래도 자식에게 손벌리지 않고 남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하다"는 강 대표는 "장애인들의 경우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 장애인용 신발은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장애인들이 제 몸에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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