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성과에 대한 정치권의 논란이 9일 국가원수 모독 및 망언 시비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이 노 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등신(等神)외교'라고 비하한 게 도화선이 됐다. 여야는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 받으며 소란을 벌였고, 국회는 대정부질문을 중단하고 속개하지 못한 채 현 정부 출범 후 첫 파행을 겪었다.여야 난타전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국빈 대우를 받은 것 말고는 하나도 얻은 게 없다", "결과적으로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방일외교가 됐다"는 등 한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맹렬히 성토했다. 박희태(朴熺太) 대표는 "공수래공수거로, 밥만 먹고 온 것 이상의 확실한 성과나 합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상배 의장은 "이번 방일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고 '등신외교'의 표상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극언을 했다. 이 의장은 기자들이 "'등신외교'라고 했느냐"고 거듭 묻자 "그렇다. 왜 표현이 이상하냐"고 반문해 의도적인 폄하임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이 의장의 발언을 알고도 공식 대응을 하지 않다가 오후에 청와대의 강경 분위기를 전해들은 뒤 소나기 논평을 발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 "금도를 넘어선 망발"이라며 강력히 성토하고 나섰다.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국회의원의 품위와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볼 수 없는 망언중의 망언"이라고 비난했다. 이평수(李枰秀) 수석부대변인은 "이 의장의 발언은 대통령 폄하와 비하가 아니라 온 국민을 무시하는 파렴치의 극치"라며 "차라리 귀를 씻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 대정부질문 파행
정대철(鄭大哲)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청와대 등과 논의한 뒤 오후 2시께 부랴부랴 국회 146호실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참석률이 저조, 의사정족수에 미달해 회의는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간담회에서 정 대표는 "그냥 넘어가서 전례로 남는다면 국가원수가 외교를 하는데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며 강경 분위기를 선도했다. 배기선(裵基善) 의원은 "대통령을 능멸한 한나라당을 용서할 수 없다"고 흥분했다. 설훈(薛勳) 의원은 "'오냐 오냐 하니 할아버지 상투를 틀어쥔다'더니 대통령이 아직 외교활동 중인데 야당의원이 욕지거리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宋永吉) 의원은 "이 의장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반역행위와 같다"고 비난했다.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아무리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하더라도 집권여당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담회가 끝난 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에게 이상배 의장의 당직 해임과 박희태 대표의 사과,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하며 대정부질문 참여 거부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오전에 의원 세 명의 대정부질문을 순조롭게 마쳤던 국회는 오후 들어 회의를 다시 열지 못하고 자동 유회했다.
한나라당은 긴급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이 의장이 개인 성명을 통해 유감표명을 한 것 자체가 사실상 사과 발언"이라며 "민주당이 신당 문제로 인한 내부 분열과 대통령의 굴욕외교를 호도하기 위해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대통령이 정치인을 '잡초'라고 하거나 '양아치', '깽판' 등의 비·속어를 사용해 왔지만 우리는 이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면서 "민주당은 집권여당답게 철없는 행동을 중단하고 민생정치의 현장으로 즉각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여야 총무는 이날 저녁 국회 귀빈식당에서 국회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으나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돌아서 10일 본회의 일정도 불투명하다.
/김성호기자 shkim@k.co.kr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