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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22>6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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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22>6월 항쟁

입력
200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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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10일 오후 6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6·10 국민대회가 전국에서 열리면서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릴 6월 시민항쟁이 시동을 걸었다. 시민항쟁은 바로 이 날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당시 집권당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6월29일에야 일단락되었다. 항쟁 기간 내내 전국의 수많은 거리는 최루탄 연기와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으로 뒤덮였다.계엄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소문도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그 전 해 6월 경기도 부천경찰서에서 한 여학생에게 저질러진 추악하기 짝이 없는 고문 사건의 기억을 분노의 원동력으로 삼아, 그리고 그 해 1월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아 숨진 박종철과 6월9일 연세대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가 된 이한열의 기억을 용기의 자양분으로 삼아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그들은 각자의 커다란 분노의 힘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킴으로써 1926년 이후 다시 한번 6월10일을 역사의 한 상징적 날짜로 만들었다.

시민항쟁의 주체는 그 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6월 시민항쟁을 실패한 혁명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6월 항쟁으로 크게 변화한 한국의 사회·정치적 환경은 군인 출신의 새 대통령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첫 삽을 뜨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 정부가 세 차례 바뀌면서 한국인들의 시민적 자유는 크게 신장했다. 아직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국가보안법이 유사파시즘 시대의 유물로 보기 흉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16년 전의 한국 사회와 질적으로 다르다. 그 점에서 6월 항쟁은 성공한 시민혁명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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