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 한국전쟁의 포연이 멎은 지 갓 1년이 지난 한반도는 도무지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다. 54년생 말띠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암울했던 60,70년대. 54년생들은 몰가치와 획일화를 강요 받았다. 그래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분노를 삭이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보낸 49년. 하지만 54년생 말띠 인생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의욕을 다진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54년생 말띠 인생들의 파란만장했던 역정을 통해 54년 창간한 '말띠신문' 한국일보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자.
우정훈(4월26일생, 경기 파주) 서울시 홍보담당관실 여론팀장
이성철(12월12일생, 서울) 연세대 안과 교수
진용(4월5일생, 충남 서산) 한일외국어전문학원 원장
박경호(8월11일생, 경남 거제) 현대건설 상무
이명임(5월8일생, 경남 진해)주부 허브전문점 운영
보릿고개와 군사문화
전쟁이 끝나자 이땅에는 '베이비 붐'이 일었다. 종족보존을 위한 자연의 섭리인 듯 2차대전을 치른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출산율은 나날이 높아갔다. 박경호 상무는 "전쟁중에 태어난 50~53년생들의 중고교 진학시 경쟁률은 기껏 2대1이었지만 54년생들부터는 평균 3~4대 1이었다"며 베이비 붐 세대의 고달팠던 추억을 떠올렸다. 먹을 것도 없는 데 인구만 늘어서인지 늘 배가 고팠다. 주부 이명임씨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산나물이라도 캐지 않으면 저녁엔 멀건 죽을 먹어야 했다"고 했고, 진용 원장은 "급식으로 나온 덩어리 우유를 집에 들고 갔지만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교시절의 추억은 대부분 유신독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오버랩된다. 교련복에 각반차고 총검술을 따라하던 교련시간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하다. 획일적인 군사문화에 대한 거부감 탓인지 교복 모자를 삐딱하게 써보기도 하고 머리도 길러봤지만 "군사문화와 과열입시에 어디 마음 붙일 데가 없었다"고 우정훈 팀장은 회상했다. 대학 시절, 유신반대를 위한 거듭된 시위와 이에 맞선 군부정권의 계엄령에 "제대로 학교를 다녔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앞만보고 달렸다
박 상무는 78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취업경쟁이 치열한 요즘과 달리 건설경기가 최고였던 70년대 말에는 상·하반기에 무려 2,000명씩 4,000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입사하던해 중동으로 나가 5년간 근무한 뒤 88년까지 캐나다 등 주로 해외 공사현장에서 일했다. 국내로 돌아와 2001년까지는 광양만의 율촌지방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앞만보고 달려오다보니 결혼도 늦었다"는 박 상무의 큰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다.
진 원장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외국어 학원 강사로 투신해 26년간 외길을 걷고 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일념때문에 밤 12시 이후 귀가가 다반사였다. 덕분에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에 15평 규모의 외국어전문학원도 차릴 수 있었다. 우 팀장은 1988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파견돼 세계적인 행사를 무사히 마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우표축제 등 문화 이벤트를 담당했었는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서너달동안 철야작업을 했지만 고된 줄 몰랐다.
위기지만 멈출 순 없다.
불철주야 20년 이상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이젠 다들 체력저하 현상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성철 교수는 그래서 몇년 전부터 가능하면 승강기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고 집에서 병원을 오갈 때도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젋은 세대에게 추월당할것 같은 위기감도 느낀다. 우 팀장은 "수시로 컴퓨터와 인터넷 교육을 받은 덕분에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젊은 후배들처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문자서비스를 주고받는데는 서툴다"고 했다. 요즘은 심각한 경기불황으로 인해 외환위기 당시처럼 '언제 직장을 떠나야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이 교수는 "순발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 들을 생각하면 '이젠 더 잘할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4년전 허브 전문점을 개업한 주부 이씨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인생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시달렸지만 이젠 매일 활력이 솟는다'고 했다. 진 원장도 "경기가 IMF 때보다 더 나쁘다지만 이젠 바닥을 친 느낌"이라며 의욕을 나타냈다. 아직 공무원 아파트에 사는 우 팀장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각오다. 박 상무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분주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 54년 말띠 인생들의 심장은 여전히 고동치고 있다. 창간 49주년을 맞은 54년생 '말띠 신문' 한국일보처럼....
김정곤 이왕구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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