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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가출로 만난 운명의 책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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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가출로 만난 운명의 책 한권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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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살 때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가출을 했다. 전남 장성군 삼서면 고향집을 떠나 고모부가 계신 광주로 향했는데 지리를 몰라 철길을 따라 가면 광주에 닿겠거니 생각하며 무작정 걸었다.당시 난 고모부께서 전남방직에 다니셨고 사택에 산다는 것만 알았다. 우뚝 솟은 굴뚝을 보고 전남방직까지는 찾았으나 집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집집마다 전깃불이 켜지고 지친 나는 더욱 불안해지고 초조해졌다. 사택 단지를 몇 번이나 돌고 돌아 헤맨 끝에 겨우 고모부 집을 찾았다. 깜짝 놀라면서 반겨주시던 고모의 모습이 반백 년이 훌쩍 넘은 세월인데도 어제인 듯 선하다. 이 가출은 나의 운명과 진로에 큰 전환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무작정 찾아온 나를 본 고모부께선 나의 전학과 교육 문제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시골을 떠나 도회지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해주셨다. 사정이 여의치 못해 일단 초등학교는 고향에서 졸업하고 중학교부터 광주에서 다니기로 했다.

시골집으로 돌아오면서 광주에서 몇 권의 책을 얻어 왔다. 그 중에서 당시 달달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던 '역사를 빛낸 사람들' 은 이후 내 진로와 인격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철부지 나이로 신작로와 철길을 따라 무작정 걸으며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나게 되었고, 어렵게 구한 책을 통해 나름대로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트로이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실재했다는 믿음으로 발굴에 나서 수 천년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찬란한 트로이 문명을 세상에 선보인 19세기 위대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레이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져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였다. 전문가도 아니고 배움도 풍부하지 못한 그가 트로이 문명의 발굴을 꿈꾼 것은 여덟 살 때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란 책 한 권 덕택이었다. 이 책에는 호메로스가 쓴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실려있었다. 모두가 꾸며낸 이야기로 알았지만 어린 슐레이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스가 있으면 트로이도 있었을 것이란 믿음으로 발굴을 꿈꾸었다.

고생 끝에 큰 부자가 된 슐레이만은 40살에 어릴 적 꿈을 향해 '담대한 일탈'을 시작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발굴의 여정을 떠난 그는 마침내 터키 지방의 해안 언덕에서 신화도 전설도 아닌 역사 속의 트로이 문명을 찾아냈다. 문명사의 대전환을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청소년기는 간혹 일탈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나 한 사건을 계기로 마음을 다잡아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 간다. 어릴 적 가출경험은 교육자가 된 뒤 '중도탈락 학생이 없는 학교'에 대해 남다른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

김 원 본 광주광역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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