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100일 잔칫상에 축하보다 질책이 많이 쏟아졌고, 여론조사 결과도 전 대통령들에 비해 나빴다.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52%, "잘못하고 있다"는 38%로 나왔다. 취임 후 100일을 겪으며 노 대통령이 "좋아졌다"가 14%, "싫어졌다"가 40%였다. 다른 신문의 조사에서는 "잘한다" 가 19%에 불과하고 "잘못한다" 가 26.8%였다.
대통령 취임 직후 치솟던 인기는 100일 무렵엔 대개 떨어진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인기 하락은 심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86.3%에서 83.4%로, 김대중 대통령은 70.7%에서 62.2%로 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59.6%에서 40.2%로 떨어졌다. (이상 한국 갤럽 조사)
물론 중요한 것은 임기 초의 인기가 아니라 임기 말의 인기다. 취임 초기의 높은 인기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지금 노 대통령의 인기는 적당한 수준이다. 낮은 인기에 긴장하면서 노력하면 높은 지지도 속에 퇴임하는 행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취임 초 호감을 품고 있다가 "싫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40%나 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위 '코드'가 안 맞기 때문이다. '코드'란 말은 처음에 노 대통령 측근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 정부와 코드가 안 맞다고 느끼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잦은 말 실수에 대해서는 그 동안 수많은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것이 단순한 말 실수가 아니라 코드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실수'는 고치려고 마음먹고 반복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코드의 차이에서 오는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의 차이는 좁혀지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도 "코드가 안 맞는 사람은 곤란하다"고 말했던 게 아닌가.
최근 코드의 차이를 실감케 했던 또 하나의 광경은 '박수치는 국무회의' 였다. 여론이 좋지 않아서 취임 100일의 분위기가 가라앉다 보니 서로 격려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성해야 할 때 박수치는 장관들의 모습은 좀 기이하게 비쳤다. 4일 국무회의에서 4번이나 박수가 터져 나왔다는데, 그래서 장관들 사기가 많이 올라갔을까.
"그 동안 누를 끼쳐 죄송하다. 심기일전해서 잘 해나가겠다"고 말한 윤덕홍 교육부총리도 그날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퇴진압력이 빗발치고 있는 윤 부총리를 박수로 격려한 것은 '부당한 압력'에 기죽지 말라는 뜻인가. 여론이 어떻든 장관들끼리 똘똘 뭉치겠다는 건가. 이러다가 국무회의에서 촛불 들고 묵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같은 날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고건 총리를 많이 질타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말 실수라기 보다는 코드의 차이다. 문 실장은 정치를 오래 했고 노 대통령의 측근도 아니었는데, 어느 새 같은 코드로 맞췄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어느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내가 국무총리를 질타했다"는 말 실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청와대 아니고는 상상 못할 일이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나라를 이끌고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주장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생각과 전력이 다른 사람들을 원칙 없이 끌어들여 '잡탕'을 만드는 것 보다는 노선이 같은 사람들로 팀을 짜서 능률적으로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끼리끼리'의 한계를 항상 점검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끼리끼리 코드를 맞추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다수 국민과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호감을 품었던 사람들이 등 돌리게 된다면 국정수행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대통령과 국민이 코드가 안 맞으면 대통령도 괴롭고 국민도 괴롭다.
취임 100일의 인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싫어졌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심각한 사태다. 그 이유를 잘 분석해서 그들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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