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高建) 국무총리는 한국일보 창간 49주년을 맞아 6일 총리공관에서 단독 인터뷰를 갖고 "참여정부의 위기관리시스템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총리가 주관이 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통해 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고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국정 시스템이 과도기적 상황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내가 나서서 챙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고 총리는 "한국일보 창업사주인 고(故) 장기영(張基榮) 선생의 '뛰면서 일한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참여정부가 아직 미흡한 점은 있지만 신발끈을 다시 고쳐매고 열심히 뛸 것을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린다"고 말했다.―참여정부가 출범 100일(4일) 관련 여론조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고 총리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의 허리를 자르고 답변을 시작했다. 하고싶은 말이 무척 많았던 듯 했다.) "참여정부는 어려운 문제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 불편할 대로 불편해진 한미관계, 세계적 경제 침체에 동반된 경제의 구조적 불안, 이라크전의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 요인, 그리고 해묵은 사회적 갈등 등입니다. 물론 미흡한 점도 있지만 한미 관계의 정상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기틀 마련 등 보람 있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불리한 외부 상황에 비춰볼 때 잘 해결해 왔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참여정부는 탈권위적 정치를 지향하고 명칭처럼 국민 참여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갈등을 가급적 대화와 타협으로 푼다는 국정철학을 추진, 해묵은 갈등이 한번에 분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을 해결할 시스템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권위주의 정권 때의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새로운 시스템이 미처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대화와 타협만 부각돼 '법과 질서, 원칙은 어디 갔느냐'고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시스템 정착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요. 총리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많습니다.
(고 총리는 이 질문에 큰 손짓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자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해당부처 장관, 관계부처 장관회의, 그리고 국무회의 순의 단계별 조정이라는 당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새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까지 시급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우선 총리 주재의 주 2회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만들자고 지난달 20일 대통령에게 건의했습니다. 회의 구성 후 첫 대응이 공무원 노조 문제였는데 원칙을 정해 대응하니 제대로 됐습니다."
(고 총리는 밝게 웃으면서 최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의 '총리 질타' 논란의 전말로 자연스레 화제를 옮겨갔다. 고 총리는 문 실장이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모두 총리가 주재하라고 했다"고 양보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회의주재의 권한과는 전혀 관련 없는, 단순히 회의개최 장소에 관한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문 실장의 회의참여부터 고 총리가 문 실장의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도 밝혔다.)
―총리가 당분간 국정 현안에 대한 대응을 주도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가 과도적 시스템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구상중인 새 시스템 가동 전까지 공백을 제가 메우는 것입니다."
―헌법상 책임총리는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앞의 답변이 혹 월권이 아닐까 하는 시각을 염두에 둔 듯) "현행 헌법하의 책임총리는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고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도 헌법 규정 내에서 대통령의 명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총리는 중간적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권한을 요구하면 (대통령 또는 내각과) 충돌이 생길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고 총리를 임명하면서 '개혁과 안정의 조화'로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혁과 안정은 대립이 아닌 보완적 개념입니다. 구체적으로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특히 우려하던 것이 한미관계였지만 이제 본 궤도에 올라왔습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도 재확인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도 일각에서 우려하던 요소가 많이 순화됐습니다. 바로 개혁과 안정의 보완입니다."
―문민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지내셨는데 지금과 비교한다면.
"다 힘들지만 지금은 훨씬 바쁩니다. 권한이 늘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5∼6년 사이에 왜 이리 바빠졌는지…. 사회 규모가 커지고 질적으로 다원화되고 복잡해져 갈등 구조를 많이 안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과 비교해 봐도 한번에 이렇게 많은 갈등을 안고 간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최근 담뱃값 인상과 관련한 국무회의에서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관련 부처와 협의 전에 인상 방침을 밝힌 복지부 장관의 돌출행동 때문이 아닙니까. 각료들의 이런 행동이 혼선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 총리는 최근 각 부처 장관에게 돌출행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대답은 좀 달랐다.) "과거 정부에서는 정책 결정 전에 노출이 안됐지만 지금은 조정 과정에서 공개가 되는 것일 뿐 특별한 돌출행동은 없습니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테마국무회의 위주로 브리핑이 이뤄져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만 비쳐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여러 부처가 관련된 정책은 결정되기 전까지 각 부처의 주장이 있게 마련입니다. 미국의 경우 국무부와 국방부가 하루도 (의견이) 같은 날이 없지만 언론도 '망한 정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각료에 대한 헌법상 해임 건의권을 행사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최근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실시와 관련해 혼선을 빚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또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히 할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죠. 하지만 윤 부총리는 제가 언급할 문제가 아닙니다. 결자해지 입장에서 해결하도록 후원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고 총리는 이어 반부패 대책의 하나로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꼭 이뤄야 한다"고 말했는데 노 대통령 주변의 정치자금 의혹으로 질문을 이어가자 "그것은 사실 관계를 잘 모른다"고 넘어갔다.)
―브리핑룸 제도 도입 과정에서의 잡음을 조정하셨는데 현 정부의 '언론과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브리핑룸 제도는 취재를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자유스럽게 하자는 것인 만큼 행정정보 공개 확대도 같이 가야 했는데 정부가 서투르게 시작한 측면이 있습니다. 건강한 긴장관계는 그 동안의 비정상적 관언(官言)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점에서는 타당하지만 이것만 자꾸 강조하다 보면 적대관계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긴장 관계와 신뢰·이해관계라는 두 축이 모두 필요합니다."
(고 총리는 일부 각료 등이 언론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데 대해서도 "잘못은 고쳐야 하겠지만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최근 주한 미군 재배치 계획은 '북핵 문제 해결 뒤 미2사단 재배치 논의'라는 원칙에서 물러선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한 의도와 취지가 충분히 반영된 것입니다. 합의문에 특정한 기한을 정하지 않고 '몇년 후'(years)라고 해 중장기적 검토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또 두 단계로 나눠 이전하고,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 완료 이후에도 전방 합동훈련센터에 훈련군이 교대로 상시 주둔하기로 했습니다.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자동개입이 보장되는 데다, 주한 미군의 동북아 안정 역할이 추가돼 대북 억지력은 더 강화됐습니다."
고 총리는 마지막으로 부패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유혹에 어려운 때도 있었다고도 했다. 고 총리는 "윗물만 맑다고 아랫물까지 맑으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실용적 청렴관을 밝혔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율기(律己)중 '지자이렴'(智者利廉)과 스스로 만든 '백벌백계'(百罰百戒)라는 구절을 소개했다. 부패한 공직자는 관용 없이 모두 처벌해 청렴하게 사는 것이 결국 이롭도록 만드는 행정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담=신재민 정치부장
정리=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프로필
65·서울
경기고(1956)·서울대 정치학과(정치학·도시계획학 석사)
서울대 총학생회장(1959)
고등고시 행정과(1961)
내무부 새마을 담당관(1973)
전남도지사(1975∼79)
청와대 정무2수석·정무수석비서관(1979∼80)
교통부장관(1981)
농수산부장관(1981∼82)
12대 국회의원(1985∼88)
내무부장관(1987)
서울시장(관선 1988∼90, 민선 1998∼2002)
명지대 총장(1994∼97)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1996∼97)
국무총리(30대·19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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