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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1> 또 하나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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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 성공신화 윤윤수 <21> 또 하나의 성취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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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석같이 믿었던 S가 등을 돌린 데 이어 Y, K 등 창업 멤버들이 잇따라 반기를 들자 회사가 휘청거렸다. 인간적인 배신감에 시달렸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사업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러다 더 이상 수습을 미뤄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나와 휠라 비즈니스를 함께 하던 호머 알티스가 내게 충격적인 말을 전해줬다.

"진 윤, 당신 회사의 S라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당시 알티스는 88 서울올림픽 관광차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머물고 있었는데, S가 숙소로 찾아와 휠라 비즈니스를 자신과 함께 하자고 졸랐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일을 꾸미려고 하다니.' 나와 알티스가 어떤 고생을 하면서 휠라 비즈니스를 성사시켰는지 몰랐기 때문에 저지른 오판이었다. 어쨌든 더 이상 S를 가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S에게 상당한 돈과 사업 일부를 떼어주고 회사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Y, K 등도 모두 다른 사업을 조금씩 나눠주고 내보냈다. 이렇게 분란을 수습하고 나니 60명 가운데 무려 40명이 회사를 빠져 나갔다.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갔던 회사를 추스리는 데 4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에 사업 대부분을 정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미 고임금 구조의 문턱에 서 있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수출품은 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회사가 미국에 가져 다 팔던 물건들이 모두 가격 메리트를 잃어 버리기 시작하자 미국쪽에서도 서서히 다른 나라로 눈길을 돌렸다.

결국 이것저것 정리하고 보니 남은 것은 휠라 부문과 전동 카트 뿐이었다. 휠라는 궤도에 올라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쓸 것이 없었고, 회사는 오로지 전동 카트 한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단 공장부터 옮겼다. 마침 부도로 넘어간 충북 보은의 연탄 공장부지가 있어서 그곳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멀었지만, 상대적으로 땅값이 쌌기 때문에 훨씬 넓은 땅을 사들일 수 있었다.

공장을 옮긴 뒤에도 만족할 만한 품질의 전동 카트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러자 우리 제품을 판매하던 미국 회사도 견디다 못해 사업권을 다른 회사에게 넘겼다. 시련기였다. 하지만 시간과 공을 들이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제조업의 매력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카트 생산을 시작한지 6년 만에야 괜찮은 품질의 제품이 나왔다.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당시 감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중에 회사 이름을 라인실업으로 바뀌었는데, 여기서 생산하는 전동 카트는 세계 어떤 제품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일등 제품이라고 자부한다.

보은 공장도 엄청나게 커졌다. 지속적인 투자를 계속한 덕분에 공장 부지만 2만 평에 달하고 생산라인도 4개로 늘어났다. 또 중국 상하이에 1만평 규모의 제2 공장도 건립, 월 5,000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매출만 무려 420억원에 이르렀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외진 곳에 있는데다 힘든 일을 기피하는 세태 때문에 공장에 와서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중소기업을 하는 어려움이 어디 이뿐이랴.

사업하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는 없다고 말한다. 기계 관련 제조업은 기술 확보 없이 섣불리 사업을 시작했다가는 자금이 풍부한 대기업도 쉽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분야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가능성 하나만 보고 제조업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내가 만든 전동 카트가 혼다, 스즈키 등 일본 굴지의 회사 제품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휠라를 통해 이룬 성공보다는 전동 카트를 통해 이룬 성취감이 훨씬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마 기계산업 분야의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이만한 성공을 거둔 예도 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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