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서 봄꿈을 아직 깨지 못하였는데 계단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 어느덧 10년을 단위로 세월을 세는 나이가 되니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학문을 닦으라고 권했던 옛 사람의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일전에 고교 동창생들의 졸업 30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다. 필자는 가지 못하고 가족의 인사를 담은 비디오 동영상만 보내 그리움을 나누었다. 십년 전의 졸업 20주년 행사에 비해 이번에는 참석하신 은사들의 숫자가 훨씬 줄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대에 오직 인재들을 키운다는 자부심에 사셨던 스승들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한국의 정치발전과 경제 발전의 뿌리에는 헌신적인 교육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국어, 영어, 수학도 가르쳤지만 인격을 갖춘 쓸모 있는 인간을 키우는 것을 그보다 우선하는 목표로 삼았었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괄목할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 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선진국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 목표다. 이를 이루기 위한 방향을 잘 잡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품위 있고 효율적인 사회 기풍'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우리나라 신문을 접속하여 독자들의 논평을 읽어보면 말들이 너무 거칠고 비합리적인 주장들이 많다. 자신과 다른 입장도 존중하며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후진국으로 다시 떨어지는 지름길로 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막가는 사회가 되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타고 막말하는 정치인들이 잘 되고 막가는 집단들이 힘 쓰는 나라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품위 없고 비합리적인 사회는 결코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없다.
우리는 지식 산업 시대를 맞고 있다. 열심히 땀만 흘린다고 되는 게 아니고 머리를 써서 효율성을 높여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고급인력의 유치가 자본 유치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좋은 인력을 끌어 들이려면 교육, 교통 등을 포함한 생활 여건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얼마 전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맡은 분에게 지역 개발에 대해 조언한 적이 있다. 몇 백억원을 들여 건물 몇 개 짓는 것보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추진할 능력을 갖춘 인재를 몇 사람이라도 끌어와 좋은 생활 여건을 마련해주면 그 지역에 몇 천억원의 부가가치를 쉽게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그 분의 반응은 그런 사람을 끌어오려면 연봉을 몇 억원은 주어야 하는데,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할 사람이 많아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웬만큼 경쟁력 있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와 사고의 틀을 갖고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 동북아 중심국가도, 지방분권시대도 이러한 폐쇄적인 생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개혁과 개방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최근의 행로를 보면 그동안 진행된 개혁의 성과마저 후퇴시키는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일들이 개혁의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어 개혁을 지지해야 되는 건지 반대해야 되는 건지 헷갈리게 만든다.
개혁의 기준은 분명하다.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개혁이다. 권력의 이동이 개혁은 아니다. 기득권 지키기는 더구나 개혁이 아니다. 물론 개혁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식산업시대의 선진국이 되려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채 수 찬 미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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