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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엔 "가벼운 드라마"가 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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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엔 "가벼운 드라마"가 뜨네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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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드라마여야 뜬다'.최근 방송가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밝고 경쾌한 터치의 드라마가 인기를 끈다는 통설을 실감하고 있다. 출생의 비밀, 세대간에 걸친 원한 관계 등 복잡한 짜임새의 드라마보다는 다소 유치하다는 얘기를 듣더라도 고민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가 환영 받는다는 얘기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SBS '천년지애'가 대표적인 예. 사극과 현대물을 결합한 판타지 사극을 표방한 '천년지애'는 종영 때까지 부여주 공주(성유리)와 강인철(소지섭), 타쓰지(김남진)의 단순한 삼각관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대신 '나는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 '니가 나를 능멸하느냐' 등 성유리의 어색한 고어체 말투가 초중 학생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복잡한 스토리보다 단순한 스토리가, 스토리의 개연성보다는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나 톡톡 튀는 대사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주 첫 방영된 MBC 월화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SBS 수목드라마 '선녀와 사기꾼'도 경쾌함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시청률 14∼15%(이하 TNS미디어코리아 집계 기준)로 산뜻한 출발을 한 김래원, 정다빈 주연의 '옥탑방…'은 2001년 젊은층에 큰 인기를 모았던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젊은 남녀가 하룻밤의 실수로 얼떨결에 동거를 시작한다는 설정 자체가 인터넷 소설의 경쾌함과 즉흥성이 한껏 드러날 수 있는 장치 역할을 한다. 정다빈이 엎드려 자다 일어난 도서관 책상에 침이 흥건하게 고여 있거나 두 주인공이 옥탑방 평상에 앉아 돈벌이로 마늘을 까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안재욱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천재적 사기꾼으로 등장하는 '선녀와…'는 첫 방송 때 시청률이 16.7%나 나와 SBS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MBC '남자의 향기'(13.5%)를 앞지른 것은 물론, KBS2 '장희빈'(16.9%)을 불과 0.2% 포인트 차로 따라 붙었다. 첫 회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을 팔아먹는 사기가 등장하고, 핸드폰을 서너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다양한 직업 행세를 하는 안재욱의 연기가 경쾌하게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SBS 관계자는 "네티즌의 반응이 좋아 3회분부터는 시청률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드라마의 이같은 경향은 얼마 전 20, 30대의 호평을 받고 종영한 MBC 미니시리즈 '위풍당당 그녀', '내 인생의 콩깍지' 에서도 감지됐다. 특히 '위풍당당…'은 배두나의 '엽기발랄한' 연기와 만화적 설정으로 젊은층을 미니시리즈 시청자로 끌어들였다. 극 중간에 뮤지컬을 도입한 '내 인생의…'도 한층 발랄한 느낌을 강조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드라마의 방영 기간은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경고음이 퍼지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IMF 사태로 경기가 바닥을 쳤을 때도 기업을 배경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젊은이들의 밝고 경쾌한 사랑을 그린 김희선 주연의 SBS '미스터 큐'가 큰 인기를 끌었다. 실생활에서 가뜩이나 위축된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복잡한 이야기와 갈등 관계로 골머리를 썩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기 영향론자'들의 분석이다. 최근 드라마 작가군의 연령이 20·30대로 크게 낮아지고, 케이블·위성 TV나 인터넷 등을 통해 볼거리가 많아진 것도 가벼운 드라마가 득세하는 요인으로 방송가는 꼽고 있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영상홍보학과 교수는 "'야인시대' 같은 대하드라마 이후 반사적으로 가벼운 드라마가 강세를 띠는 측면도 있지만, 경기침체나 불안한 정치상황으로 뭔가 억눌려 있는 느낌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시청자의 욕구를 제작진이 읽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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