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유학이 일반화하고 있다. 국제화 바람을 타고 조기유학이 급증하고 있고, 국내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미국 등 외국 유명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자녀와 아내를 외국으로 보내고 자신만 국내에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도 등장했다. 바야흐로 '신(新)유학시대'다. 일부 특권층 자제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유학이 이제는 우리사회의 트렌드로 정착했다. 본지는 창간 49주년을 맞아 새로운 유학붐의 실상과 허상을 짚어주는 한편 시행착오 없는 유학을 안내해주는 유학시리즈를 매주 화요일자에 게재한다. 국내 유학 준비생 및 유학기관, 유학전문가, 현지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다각적인 입체 취재를 통해 '유학의 모든 것'을 조명하는 시리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5일 강원 횡성군 소사면 영동고속도로변에 위치한 민족사관고 다산관 3층. 프레드릭 윌리엄(58)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국제계열 1학년 학생들의 영문학 수업이 한창이다. 교실 창문 너머로 학생들의 왁자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11명의 학생들이 원서로 '주홍글씨'를 읽은 뒤 '사랑의 의미'를 주제 삼아 유창한 영어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 학생이 "사랑은 욕구"라는 논리를 펴자 다른 학생이 즉각 나름의 논거를 제시하면서 "사랑은 희생"이라고 반박한다. 교사의 역할은 이야기 청취와 토론의 방향 제시일 뿐이다. 월리엄 교사는 "상당수 학생들이 미국의 명문 사립고에 전혀 뒤지지 않는 어학능력과 논리적 사고를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 학교 1학년 54명, 2학년 30명, 3학년 14명 등 총 98명의 국제계열 학생들은 서울대가 목표가 아니다. 이들은 외국 명문대로의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도 18명의 국제계열 졸업생 전원이 하버드대 MIT 등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 사립대)와 다른 외국 명문대에 진학했다. 요즘 명문 특목고들은 대부분 이 같은 정예 외국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다.
민족사관고의 경우 국제계열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미국 명문대 입시에 대비한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된 원서교재를 사용하고 휴식시간이나 기숙사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적지않다. 교과 과정도 일반 고교와 다르다. 미·적분학 등 82학점의 심화 선택과목이 있고, 이들 중 40학점은 미국 고교에서 시행중인 고급단계(AP) 교과과정으로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 학점 인정을 받는다.
이 학교 국제계열 1년생인 김주연(16)양은 "아버지를 따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할 때 학생들을 무한대로 배려하는 도서관 및 자료 검색 시스템을 보고 미국 대학에 바로 진학키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 대원외국어고의 분위기도 민족사관고에 뒤지지 않는다. 5일 오전 이 학교 복도는 미국 대학진학적성시험(SAT)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7일 미국 대학 특차지원을 위한 마지막 SAT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원외고는 1998년 국내 최초로 유학반이 개설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 학교는 정규 수업을 마친 오후 3시부터 유학준비학급인 SAP반(Study Abroad Plan)을 별도로 편성, SAT? 및 SAT?의 작문 부문을 공부시키고 있다. 올해는 유학반 학생 중 40%인 14명이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예일대 등 아이비리그에 진학했다.
서울과학고는 2001년과 지난해 1명씩에 그쳤던 외국 학부 유학생이 올해는 11명으로 대폭 늘었다. 올해 유학생중 10명은 2년만에 고교과정을 끝낸 조기졸업생이고 7명은 국제물리 및 화학·수학·정보 올림피아드 입상자이다. 대다수 학생들이 MIT와 스탠퍼드대에 중복 합격했다. 진로상담부 오지택 교사는 "지난해부터 정부 및 민간에서 학부 유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늘면서 많은 고교생들이 미국 대학 유학을 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민족사관고 등이 학생들을 대거 아이비리그로 보내는 데 성공하자 일반고교 학생 사이에도 유학 열풍이 불고 있다. 강남 일대에는 학교에서 따로 유학반을 운영하지 않는 일반고 학생들을 위한 SAT 학원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SAT 전문학원인 카플란 어학원 김승진 상담 대리는 "SAT?의 작문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당 20만원을 호가하는 고액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많다"고 전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 박영준 서울어학원장
"미국 대학은 공부벌레보다는 다양한 관심 영역을 가진 '멀티플레이어 인재'를 요구합니다." 10여년간 고교생들을 상대로 외국 대학 직유학에 필요한 TOEFL, SAT, 영어 등을 강의하고 있는 박영준(42·사진) 서울어학원 원장은 "학부 유학을 하려면 폭 넓은 사고와 봉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박 원장은 2000년 이후 학부 유학이 크게 늘고 있는 이유를 우리나라의 국제화에서 찾았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부모를 따라 외국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외국 대학 입학을 생각하게 되며, 초·중학생들의 조기 유학도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학부 유학은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박 원장은 특목고 유학반 등에서 공부한 학생만 외국 대학 직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국내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하는 수준이면 얼마든지 외국 대학을 노릴 만 합니다.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느냐가 관건이지요. 준비된 학생이라면 특목고 유학반이나 학원은 마침표를 찍어주는 조력자 정도의 역할에 불과합니다."
그는 미국 대학 직유학 준비생들에게 3가지 부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문했다. 첫번째가 내신. 미 대학 입학의 50% 이상이 내신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영어도 빼놓을 수 없다. 박씨는 "TOEFL 점수가 580점(CBT 240) 정도는 돼야 SAT 준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봉사활동과 다양한 과외 활동은 외국 대학 직유학을 위한 마지막 요건. "진심을 담아 봉사하고 풍부하게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지원서를 쓴다면 입학 담당자들을 감동시키는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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