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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光 시대

입력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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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호사.' 양말과 신발 속에 꽁꽁 숨겨져왔던 발이 이 시대 패션과 관능, 건강의 화두로 떠오르며 화려한 비상을 거듭하고 있다.'인체의 축소판'인 발을 달래는 마사지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고 발 관련 미용제품 시장 규모는 1,000억대를 넘어섰다. 여름철 시원한 샌들차림의 발에는 어김없이 색색의 페디큐어가 발라지고 발목에 두르는 발찌에 이어 발가락지까지 등장했다. 무거운 체중을 싣고 평생에 걸쳐 지구를 4바퀴 반이나 돌아야 하는 고달픈 노역의 시대는 갔다.

"1회 5∼7만원 전혀 아깝지 않다"

1997년 패션거리 청담동에 가장 먼저 문을 연 이가자헤어비스 네일숍의 한혜영 실장은 "5∼6년전만 해도 손님 10명중 발관리까지 받는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0명이면 10명이 다 하고 또 손톱손질은 안해도 발관리는 꼭 한다"고 말한다.

발관리는 발 스파를 이용한 발의 피로해소와 소독 및 컬러링(페디큐어)을 포함하는 풀코스로 청담동에선 1회 5만∼7만원선. 여기에 종아리와 허벅지 마사지를 포함해 다리의 부기를 빼고 선을 날렵하게 해주는 특수관리를 첨가하면 10만원이 훌쩍 날아간다. 더구나 한시간짜리 풀코스 발관리를 받기위해 두시간씩 기다리는 여성들이 상당하다. 변정수 황신혜 보아 등 스타급 연예인들도 자주 들르지만 주요 고객층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평범한 직장여성. 대학생과 가정주부, 남성들도 스스럼없이 찾아온다.

압구정동의 터줏대감격인 문혜영발마사지실도 여름이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 7년 전 문을 열때만 해도 남이 발을 만지는 것에 대해 경원시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져서인지 남녀노소 누구나 발을 내놓는데 주저함이 없다. 문혜영 원장은 "초기만 해도 주로 중장년층이 건강관리 차원에서 했지만 요즘은 30대 초반 여성들이 제일 많고 20대 중후반 정도는 커플이 나란히 누워 맛사지를 받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고 말한다.

문혜영 원장은 "도대체 돈들이 어디서 나는지 5만원씩 내고 거의 매일 마사지를 받으러오는 여성도 상당수인데 돈을 세지도 않고 그냥 척척 내준다"며 혀를 내둘렀다.

발마사지나 발관리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어림잡아 7∼8년전이다. 당시 발전문 클리닉이 신사동과 압구정동 일대에 하나둘씩 문을 열면서 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2000년을 전후해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행지에서 네일숍이나 발 마사지를 경험한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관련업체들이 붐을 이룬 것이다.

발미용상품 시장 1,000억원대

발 관련 업종이 증가하면서 발 관련 미용건강상품시장도 기지개를 펴고있다. 풋케어 관련 미용제품은 이플립 마몽드 등 몇몇 국내브랜드와 이브로셰 바디샵 비오템 오리진스 등 해외 바디케어제품 위주의 브랜드, 부르주아를 위시한 색조전문 브랜드, 그리고 발관리실이나 미용실 등을 통해서만 유통되는 수입브랜드들을 다 망라해서 약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코리아나화장품 이영순 과장은 "7조원을 바라보는 전체 화장품류 시장규모에서 볼 때 바디케어용품 시장은 이제 태동기이지만 건강과 미용을 함께 생각하는 소위 웰빙(well-being) 개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성장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전망한다.

웰빙은 최근 미용건강분야를 이끄는 코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의 건강에서 나온다는 것이 웰빙 개념의 핵심이다. 정신세계의 평화와 그에서 우러나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가나 스파 열풍이 대표적인 웰빙산업. 발 관련업의 인기도 이 웰빙 개념의 확산에서 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바디샵 마케팅실 오혜진씨는 "지저분한 것, 숨겨야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발을 소중하게 '보살핌'으로써 내 몸을 진짜 사랑한다는 자족감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이 발관리의 인기 비결"이라고 말한다. 발관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이 참 소중한 사람이 된듯한 기분을 갖는다는 것. 발마사지 광이라는 한 여성은 "남편이 발을 씻겨주면 그게 여자로서는 최고의 호사라는 이야기도 있지않느냐"면서 "더럽고 피곤한 발을 남이 정성스레 어루만져주니까 왕비 부럽지않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노역에 찌든 발에게 해방을

패션트렌드에 민감해지면서 여름철에도 스타킹을 꼭꼭 챙겨신던 여성들이 맨발에 샌들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도 발관리업이 호황을 누리는 계기가 됐다. 패션칼럼니스트 조명숙씨는 "불과 4∼5년전만 해도 여성들이 여름엔 살색 스타킹을 신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여성이 여름엔 맨다리가 더 자연스럽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공감대를 갖고있다. 발의 노출이 일상화하며 남의 시선을 끄니 좀 더 신경써서 가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살빼기에 대한 관심이 발에까지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다. 패션홍보 전문가인 한지원씨는 최근 발마사지를 통해 한달에 8㎏을 감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체의 축소판인 발의 지압점만 잘 찾아서 눌러줘도 감량효과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이 한의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건강과 미용에 대한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발 관련 산업의 갑작스런 호황은 가부장적 문화가 오랫동안 주입시켜온 '작은 발을 가진 미인'이라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주장도있다. 원광대 정치행정언론학부 김선남 교수는 저서 '여자는 외모로 승부하는가'에서 "예로부터 미인과 발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동화(신데렐라)속에서 작은 발은 왕자의 사랑을 쟁취하는 수단이었고 중국에서 전족은 여성의 성기능을 증폭시키는 도구였으며 서양에서 하이힐은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겨졌다. 최근의 발관련 상품의 폭증은 예쁘게 꾸민 발을 가져야 미인이라는 식으로 또다시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올 여름 날렵한 하이힐 샌들에 맨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면 가만히 발을 들여다보고 되물어보자. 이 발은 진정 나에게 무엇인가.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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