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이념 성향우리의 주관적 이념 좌표는 어디쯤일까. 국민은 이번 여론조사서도 스스로의 이념 성향을 진보에서 보수까지 다양하게 평가, 비교적 양쪽으로 골고루 퍼진 이념 스펙트럼을 그려냈다. 대단히 진보적이면 0점, 중도적이면 5점, 대단히 보수적이면 10점을 매기라는 질문에 대해 24.4%는 진보적(0∼4점), 37.6%는 중도적(5점), 36.9%는 보수적(6∼10점)이라고 각각 답했다. 보수와 중도가 여전히 굳건하게 포진한 이념 구도에 국민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자칭 진보 세력이 만만찮게 견제하는 형국이다.
다만 1년 전 여론조사 때보다 보수적 성향이 소폭 보강된 반면, 진보와 중도는 미세하게 약세를 보인 기미가 이번 조사에서 포착됐다. 지난해 34.7%였던 '보수적'은 이번에 2.2% 포인트 늘어난 반면, 24.9%였던 진보적 이념성향은 0.5% 포인트 줄었다. 38.6%였던 중도적 성향도 1.0% 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극단적 보수'(10점)라고 자칭한 응답자가 지난 해 2.4%에서 1년 새 4.9%로 2배 이상 늘어난 게 눈에 띤다. 비록 오차범위 내의 이동이지만, 중심축이 약간 오른쪽으로 기우는 이념분포의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 같은 중심축의 이동은 이전 정부들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참여정부'가 안착하지 못한 게 첫째 요인으로 지적된다. 또 북한 핵 문제 등 외부적 요인과 경기침체 등 내부적 우려가 복합적으로 내재된, 불안한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조사서는 특히 지지 정당에 따라, 지난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했느냐에 따라 주관적 이념성향도 갈린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한나라당 지지자중에선 19.9%가 진보적, 45.9%가 보수적이라고 각각 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진보적' 28.3%, '보수적' 31.1%였다. 또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찍은 사람들 중 17.6%가 진보적이라고 답했으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지지자 중에는 30.3%나 스스로를 진보적으로 평가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세대별 이념 분화현상은 이번 조사서도 재확인됐다. 20대에서 50대까지 진보적 성향은 각각 33.2%, 30.5%, 20.5%, 19.6%로 점점 낮아진 반면, 보수적 성향은 24.4% 28.2%, 41.6%, 42%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 같은 경향은 1년전 조사결과와도 거의 비슷하며, 지난해 대선 결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젊은 세대의 진보적 성향은 이들의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냉전의식과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문화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동준 기자 djlee@hk.co.kr
■성장과 복지·공공부문
경제 성장보다 분배와 복지 정책을 우선하는 국민이 여전히 더 많지만 지난 해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해져 최근의 경제난을 반영했다.
'복지 정책에 치중'(21.7%)하거나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33.8%)고 답한 응답자는 모두 55.5%로 지난 해 70.2%보다 24.7%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복지예산을 현 수준으로 동결'(23.2%)하거나 '복지예산을 줄여서라도 성장에 치중해야 한다'(19.0%)는 응답자가 모두 42.2%로 지난 해(27.3%)보다 14.9%포인트 늘어났다.
성장과 복지에 대한 시각은 연령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청년층일수록 복지를, 경제 고도 성장시대의 주역인 50세 이상 고령층일수록 성장을 중시했다. 20대의 경우 '복지 치중'과 '복지 예산 증액'이 각각 26.4%와 39.5%로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복지 예산 현 수준 동결'은 50대에서 25.9%, '복지예산을 줄여서라도 성장에 치중' 견해는 60세 이상에서 32.9%로 각각 가장 많이 나왔다. 또 저소득층일수록 성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고, 지난 대선 때 민노당 권영길, 민주당 노무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 순(70.0%, 58.0%, 46.1%)으로 복지정책을 우위에 뒀다.
공공부문 파업에 대한 반대 강도는 더 강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파업은 안 된다'는 응답자가 70.6%로 지난 해(65.1%)보다 5.5%포인트 늘었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 전교조 연가 투쟁 등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시각이 느껴진다. 고령, 자영업·블루칼라, 저학력, 저소득 계층일수록 파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정치성향별로는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이 후보 지지자들의 반대(76.5%)가 가장 심했으며, 노 대통령(68.4%) 민노당 권 후보(55.0%) 지지자들의 반대도 상당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호주제·여성의무고용
호주제와 여성의무고용 비율 할당제 등 여성 권리와 관련한 사안들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지난 해에 비해 다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남녀 및 연령에 따른 찬반의 차이가 뚜렷해 양극화가 심해지는 흐름도 나타냈다.
호주제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는 의견이 20.1%로 지난 해(14.9%) 보다 5.2% 포인트 늘어났다. '유지하되 일부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45.7%로 가장 많았고 '완전폐지'나 '크게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17.2%와 14.9%였다. 호주제 폐지 반대 의견이 전체의 3분의 2에 달했지만 완전 폐지 주장도 지난 해에 비해 3.4% 포인트 늘어났다.
호주제를 폐지 또는 수정 주장은 여성(38.3%) 과 20(46.4%)·30대(42.4%), 대재이상 고학력(40.6%), 월 300만원이상의 고소득층(38.1%) 일수록 많았다. 이에비해 '현행 유지 전제 일부 개선' 또는 현행 유지 의견은 남성(72.7%)과 50(75.6%)·60세 이상(85.8%), 농·임·어업(81.6%), 월 100만원이하 저소득층(78.2%)에서 높았다. 지난 대선 지지도 면에선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의 '폐지 또는 수정' 견해가 34.7%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25.4%)보다 많았다.
여성 의무고용 비율 할당제에 대해서는 찬성의견이 '매우'(21.2%)과 '대체로'(58.9%)를 합쳐 80.1%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해 82.9%에 비해 2.8% 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반면 반대 의견은 18.1%로 지난 해에 비해 2% 포인트 늘어났다.
찬성은 30대(85.3%)와 가정주부(86.7%), 고졸 학력층(84.0%)에서, 반대는 남성(24.8%)과 50대(24.5%), 월 300만원 이상 고소득층(24.8%)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저학력층보다는 대재 이상에서 반대가 많아 심각한 고학력 실업이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盧대통령 평가
우리 국민 가운데 절반(50.3%)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답변은 31.7%,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반응은 18.6%로 부정적인 평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응답자의 47.5%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고, 모름·무응답은 2.5%였다.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지적은 40대(37.2%)와 대재 이상 고학력층(36.9%), 인천·경기(39.7%)및 서울(34.1%) 지역에서 높았다. '변화가 없다'는 답변은 60세 이상 고령층(58.7%), 중졸 이하 저학력층(60.1%), 강원(56.3%) 및 호남(53.6%) 지역에서 많았다. '긍정적 변화'보다 '부정적 변화' 답변이 많은 데는 최근의 각종 국정 혼선,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일부 국민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중 49.4%가 '대통령직 수행이 힘이 부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답했고, '개인적인 심정을 언론이 의도적으로 크게 다뤄 문제가 됐다'는 답변은 46.7%였다. 모름·무응답은 3.9%. 부정적인 평가는 60세 이상(60.0%)과 농·임·어업층(55.1%) 블루칼라(58.5%), 강원(59.4%) 충청 지역(61.4%)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언론의 잘못을 꼽은 응답은 20대(57.3%)와 화이트칼라(53.8%)·학생층(57.4%), 호남 지역(60.9%) 등 노 대통령의 주된 지지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아 이들이 최근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노 대통령의 방미 외교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66.5%가 '실용주의 외교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저자세 외교로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답변은 26.0%에 그쳤고, 모름·무응답은 7.5%였다.
'국익에 도움된다'는 평가는 50대(74.1%)와 중졸 이하(68.7%), 호남(70.9%)에서, '국익에 도움 안 된다'는 지적은 30대(32.8%), 화이트칼라(35.3%), 강원지역(34.4%)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 가운데 절반이 넘는 63.2%가 긍정적으로 평가, 눈길을 끌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지도층 세대교체
국민의 상당수는 사회지도층의 연소화, 즉 세대교체에 찬성하지만 그 비율은 지난해에 비해 7% 포인트 이상 줄었다. 청와대 요직 등에 386 세대가 다수 포진한 데 대한 장년층의 부정적 시각,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의 인위적인 물갈이 논란에 대한 일부 국민의 비판적 평가 등이 배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회지도층이 젊어져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의견은 73.1%로 지난 해 80.6%에 비해 7.5% 포인트 줄어 들었다. 대신 반대 비율은 18.4%에서 25.5%로 7.1% 포인트 늘어났다. 반대 의견은 서울과 호남 지역에서 11∼15% 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강원, 충청, 호남에서 반대의견이 30% 안팎에 달한 반면 수도권과 영남에서는 20% 안팎에 그쳐 대조적이었다.
특히 찬성 의견이 인천·경기와 PK 지역에서 79.4%, TK 지역도 74.5%에 달해 이 지역에서의 정치인 세대교체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알게 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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