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TV를 보다 보면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이 어떻게 방송에?"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가장 놀란 프로그램은 '제리 스프링거 쇼'(Jerry Springer Show)이다. 300명 정도가 방청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 진행자 제리가 등장한다. 보조 진행자는 없지만 건장한 안전 요원 5,6명이 자리를 지킨다. 사회자의 인사말에 이어 게스트들이 나오는데, 문제는 바로 이들이다.게스트들은 대단히 특별한 인물들이다. 아니 특별하다기보다는 너무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 게스트가 하소연하는 주제를 몇 가지 들어보자. "나는 50세의 싱글이며 남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내 딸이 그 남자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무려 4명과" "애인이 두 세 명 정도 있다. 최근 또 다른 애인을 만났다. 동성이라 고민된다" 등등.
당사자만 등장해 방청객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그나마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쇼의 하이라이트는 사건 당사자 모두가 차례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남자 친구와 딸이 사귀고 마음 아프다는 여성이 흐느끼던 무대 위에 잠시 후 그 딸과 남자 친구가 나타난다. 상상해 보라.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딸과 엄마는 서로를 험악하게 노려보며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안전 요원들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원들의 제지로 각자 자리에 앉는 순간 사회자의 역할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회자가 게스트들의 문제를 정말 걱정해 주는지 의문이 든다. 때로는 그의 부추김으로 더욱 노골적인 싸움이 벌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청객도 순탄한 화해를 바란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들이 펼치는 '쇼'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듯 보일 뿐이다.
이 토크쇼를 두고 같은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젓는 경우가 적잖다. 필자의 동료인 백인 남성 재미 윌크스(45)는 "시청률 경쟁을 위해 무식한 사람들을 이용해 먹다니!"라며 분개했다.
게스트들은 자신의 상황이 조작인지 실제인지 함구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섹스 스캔들이 어쩌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TV 프로그램이 그렇듯 동전의 다른 면도 발견된다. 이 쇼의 높은 시청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회자의 상원의원 출마가 점쳐지고 있을 정도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성적 사생활을 엿보기 위해 TV 앞으로 부지런히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지독한 선정성을 문제 삼으려 하면 제리의 팬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한다. 청소년을 위한 경고문도 빼먹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가?" 사회의 발전은 대중의 발전을 낳았고, 다양한 의견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선정성 시비가 만드는 의견 충돌, 미국도 그 혼란 속에 있는 듯 보인다.
/유현재 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석사과정·제일기획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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