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제과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 세계의 유능한 제과제빵사들이 기술을 배우러 오게 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11∼26일 스위스 상갈렌에서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제과·제빵 부문에 한국대표로 출전한 김영훈(22·왼쪽)씨의 당찬 약속이다. 그는 금메달을 향한 의욕을 불태우며 공휴일인 6일도 양과자, 초콜릿, 케이크, 설탕공예 등을 연습하느라 하루종일 비지땀을 흘렸다.
김씨는 이미 1월 프랑스 리옹서 열린 월드페스트리컵 아이스 카빙(아이스크림케이크와 얼음공예)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세계 최고의 제빵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제과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김영모(50·오른쪽)씨의 영향이 컸다.
지금은 일터가 된 아버지의 제과점이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그의 놀이터였다. "제과점 매장 곳곳에 퍼진 빵 냄새가 좋았고 새하얀 모자와 위생복을 입고 빵을 만드시는 아버지가 멋졌죠. 바닥청소 같은 잔심부름을 거들면 밀가루범벅이 되는데도 위생복만 입고 있으면 행복했어요."
이런 분위기 탓인지 초등학교 3학년이래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은 늘 '빵 만드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하나같이 대통령, 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연예인을 쓸 때도 그는 고집스레 제빵사라고만 썼다.
그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빵과 과자를 만들고 싶다"며 오랜 결심을 알렸다. 아버지 영모씨는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배운 제빵 기술로 서울 강남에 자신의 이름을 딴 '김영모 제과점'을 내 성공한 주인공. 아버지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아들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고 이내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아버지는 "선진 외국의 제과제빵 기술을 익히려면 외국어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어린 아들을 영국으로 보냈다. 빵 만드는 기술 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고교를 중퇴하고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이라 한계를 느꼈기에 아들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김씨는 음식문화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리옹 제과기술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빵과 과자에 입문했다. 김씨는 그 곳에서 프랑스 학생들도 2년 이상 걸려야 따는 제과자격증을 1년 만에 취득해 선생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지난해 귀국하기까지 1년 동안 프랑스 국가훈장을 받은 명인기능장 가브리엘 파이야송의 제과점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한국특유의 섬세한 손놀림을 십분 활용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빵을 만드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큰 소득이죠. "힘들었지만 알찼다는 김씨의 유학 회고담이다.
그는 또래들이 거친 정규교육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더 바랄 것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001년부터 제과제빵 부문이 기능올림픽이 된 게 너무 아쉬워요. 일찍 공식종목이 됐다면 아버지가 먼저 금메달을 땄을 거예요. 그 꿈을 제가 대신 이룰 겁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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