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돼서 자네들을 만나는구먼.""통일을 이루지 못해 먼저 간 전우들에게는 평생 죄를 짓고 사는 기분이었네."
50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찾기 위해 중부전선의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전투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육군 승리부대가 휴전회담 직전 마지막 격전지였던 금성지구 전투 50주년을 기념해 4,5일 강원 화천군 상서면 말고개와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마련한 행사장에서다.
현충일을 앞두고 50년만에 이뤄진 상봉행사에는 국가보훈처를 통해 생존이 확인된 금성지구 전투 참전자 660명 중 200여명이 참석했다.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 모두들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병'이 됐지만 생사를 넘나든 전우애는 여전히 땡볕 열기만큼이나 뜨거웠다. 이제는 살아남은 이보다 떠난 이가 더 많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 노병들은 악수는 제쳐둔 채 부둥켜 안기부터 했다.
참전 노병들은 첫날 정전협정 이후 비무장지대(DMZ)가 된 당시 격전지 근처를 둘러보며 회한에 잠겼다. "그때 통일을 했어야 하는데…."이어 승리전망대에서 '한국전쟁에서 금성지구 전투가 갖는 전사적 의의'와 '전사발표 및 토의'시간도 가졌다. 둘째 날에는 손자 뻘인 후배장병에게 생생한 한국전 체험담도 들려줬다.
금성지구 전투는 1953년 6월10일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된 같은 해 7월27일까지 휴전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군 7개 사단과 중공군 12개 사단이 화천과 철원 북방 백암산, 적근산 등에서 벌였던 최후의 격전이었다.
휴전직전 6사단 19연대 2대대 수색 소대장 겸 정보 장교였던 조덕제(72) 예비역 대령은 "억수같이 쏟아진 빗속에서 중공군이 목만 내민 채 피로 물든 금성천을 건너오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 난다"며 "소총과 포를 아무리 퍼부어도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는 중공군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눈물을 흘리면서 '건빵이 부족하다. 건빵 빨리 보내라'고 상급 부대에 무전을 넣던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건빵은 당시 실탄을 뜻하는 음어였다.
조씨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찾으려고 목숨을 아끼지 않았는데 막상 휴전 소식을 들으니 허탈했다"며 "통일을 이루지 못해 세상을 떠난 전우에게 면목이 없어 살아남은 전우들끼리 혈서를 쓰고 통곡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승리부대측은 50년 동안 전투현장 방문을 고대해 온 참전 용사들의 숙원을 해결하고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신세대 장병들이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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