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승려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조계종은 3월초 총무원의 주요 보직인 문화부장에 비구니를 기용한 데 이어 비구니의 종단 행정 참여 확대를 위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 중이며, 천태종 등 보수 종단도 비구니의 활동을 조금씩 허용하는 분위기다.
조계종의 비구니 위상 강화 방침은 법장(法長) 총무원장이 3일 발표한 중점 종책 과제에서도 제시됐다. 중앙종무기관 및 본·말사 종무직에 비구니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비구니 수행도량 지정 등 크게 두 갈래다. 올 하반기까지 초안을 마련한 뒤 내년 상반기 공청회를 거쳐 하반기부터 시행한다는 일정이다.
최대의 초점은 총무원 내 비구니부 설치. 집행 기구인 총무원에 비구니 스님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면 전담 부서를 만들어 비구니들의 교육, 복지, 의료지원 등의 사업을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구니 스님들은 올해 초부터 중앙종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를 역설해왔다. 현재 구족계를 받은 조계종 승려는 8,600여 명이며 비구니가 절반이다.
또 총무원의 여러 부서중 현재 비구니 스님이 참여하고 있는 부서는 문화부와 교육원 뿐인데 이를 사회부, 포교원 등으로 확대하고, 24개 교구 본사에 비구니 국장을 설치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더 나아가 종무직에 대한 비구니 할당 비율을 제도화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구니 수행도량 지정은 비구승에 비해 열악한 수행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비구니들은 방장 등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인근 사찰의 법회에 참석해야 하고, 안거 때에도 수행의 필수 과정인 점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조계종 종립 선원인 문경 봉암사처럼 비구니 수행 도량이 지정되면 종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수행 여건이 개선되고 비구니들의 사기도 크게 진작될 수 있다.
조계종 안팎에서는 일부 비구승의 반발 등 난관이 있긴 하겠지만 불교의 발전을 위해 비구니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 넓게 형성돼 있어 논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수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태종은 최근 창종 이래 처음으로 총무원 등 중앙 종무기관의 각 부서에 비구니 스님들을 배치, 행정 경험을 쌓도록 했다. 이들에게 특정 직급이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비구니의 역할을 절 살림과 영농으로 제한해온 관례에 비추어 보면 획기적인 일이다.
천태종은 비구니 종회 의원을 3명으로 한정하고 각 사찰 주지로도 임명하지 않는 등 다른 종단에 비해 비구니 스님들의 위상이 낮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회와 중고등학생회의 법회를 지도하는 법사로 30여 명의 비구니를 배치한 것이 고작이었다. 천태종 관계자는 "전통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비구니 스님의 역할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라고 전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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