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5일 용인 땅 논란에 휩싸인 자신의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에게 "저는 요즘 선생님을 생각하면 죄스런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습니다"라며 언론의 의혹제기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측근을 옹호하고 나선 데 대해 청와대 참모진들은 향후 파장을 우려하며 당황해 하고 있다.노 대통령은 이날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시종 존댓말로 이어진 편지에서 "저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제가 대통령만 되지 않았어도 후배 언론인에 의해 매도되는 일이 없었을 분입니다"라며 "저로 인해 생긴 선생님의 피해에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선생님이 계약서 몇 장 때문에 '대통령을 등에 업은 이권개입 의혹자'가 되어버렸습니다"라며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진실이 진실로 전달되는 나라'입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일부 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제기로 대통령 주변을 공격해 대통령을 굴복시키려 하는 방법은 지적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언론을 비난한 뒤 "그러나 부당한 권력에 내가 굴복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부당한 의혹제기로 사람들이 형벌을 받는 일이 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기자들이 무엇을 위해 기사를 쓰는지 명확하고 그 이유가 정당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세번째로 기획된 이번 대통령의 편지는 일반 국민에게는 보내지지 않고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게시됐다.
그러나 이번 편지는 문희상 비서실장 조차 모르게 준비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오후 편지 내용이 알려지자 상당수의 청와대 참모진들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상황", "노 대통령에 이씨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곤혹스러워 했다. 당장 이씨의 해명을 추진하고 있던 민정수석실측에서도 "상황 판단이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번 편지는 지난달 28일 노 대통령의 해명 기자회견 후 이씨의 용인 땅 논란이 벌어지자 노 대통령이 직접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청와대 참모진들은 편지내용을 알게 된 후에도 "누가 대통령을 말릴 수 있느냐"며 한탄만 했다.
다만 문재인 민정수석은 "편지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대통령이 편지를 쓴다고 해서 언론이나 검찰 수사에 제한이 되겠느냐"라고 옹호했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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