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이후 100일 동안 경제부처 중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공정거래위원회이다. 참여정부가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시장개혁, 재벌개혁의 주체는 공정위가 될 수 밖에 없고, 공정위도 6대 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착수, 출자총액제한 규제강화,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등을 제시하며 개혁의 의지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전임 이남기 위원장의 수뢰 사건 등으로 '경제 검찰'이라는 자부심과 위상에 타격을 입어 국민적 신뢰부터 회복해야 할 처지이다. 또 재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경제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몰아부치고 있다"는 견제를 받고 있다. 강철규(姜哲圭) 공정위원장을 만나 재벌 개혁을 몰아붙이는 공정위의 속사정과 앞으로의 재벌 개혁 방향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9일부터 시작되는 6대 재벌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의 문제점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경기 활성화 대책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6대 재벌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나서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 우려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변동을 이유로 재벌개혁을 미루자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물도 말랐을 때 고치듯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가 구조개혁의 적기입니다. 외환위기 직후로 경기가 바닥이던 1998년에도 두 차례나 내부거래 조사를 했습니다. 99년과 2000년 경기가 급속히 살아난 것도 공정위 조사가 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반대로 조사대상 계열사가 축소되는 등 공정위의 의지가 약화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가 어려운 것을 감안해 조사대상을 1∼2개 줄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상 기업만 정해놓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혐의를 모아본 뒤 결정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릅니다. 상당한 (부당 내부거래) 케이스가 있을 겁니다."
(강 위원장은 혐의가 확인된 기업에 대해서 조사에 착수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 내부거래 혐의를 이미 상당부분 확인했음을 시사했다.)
―위원장은 교수시절 재벌문제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고, 재벌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저서 '재벌: 성장의 주역인가, 탐욕의 화신인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와 비교해 재벌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벌 행태가 많이 달라지고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총수 1인이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지배구조는 여전합니다. 후진적인 지배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 선진국에서는 공정위 정책이 사업자의 경쟁정책에 집중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재벌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참여정부 5년이 지난 뒤 재벌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기를 희망하십니까.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구조로 변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영미식 기업별 독립경영체제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립경영체제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대안이 없을까 검토해 봤더니 지주회사제로 가면 계열사간 상호출자나 순환출자가 없어지고 소유관계가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어 현재 보다 진일보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됐습니다."
강 위원장은 현재의 경기 상황과 그에 대한 처방에 대해서도 재경부나 산자부 등과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으며 경제팀 내부협의 과정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나름대로 소신 발언을 하다가도, 정부 정책과 상충되는 부분은 살짝 비켜갔다.
―경기부양 정책에 대해 위원장께서 비판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경기 침체기는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고, 경쟁력 있는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경기침체는 2001년말과 지난해 이뤄진 잘못된 경기부양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두 차례에 걸친 추경 편성과 신용카드 확대 정책으로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5%)을 훨씬 상회하는 6.3%에 달했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현재의 경기 침체도 그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경기활성화 대책도 문제가 있는 거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경기활성화 대책은 급락하는 경기를 '소프트 랜딩' 시킨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경기 상황을 '위기'라고 하는데, 위원장의 생각은 뭡니까.
"사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위기라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지난 1·4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3.7%였습니다. 이는 대만 3.2%, 싱가포르 1.5%, 유럽연합(EU) 0.8% 보다 훨씬 높은 것입니다. 전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를 겪고 있는데 유독 우리만 위기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화제를 SK그룹 사태로 바꿨다. 강 위원장은 SK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외국자본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해서 '자본의 국적을 따질 필요는 없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여 논란이 된 바 있다.
―영국의 투자펀드인 소버린이 SK(주)의 단일 대주주로 떠오른 것처럼 외국 자본이 국내 재벌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자본의 국적을 따질 단계가 아닙니다. 벌써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됐고, 98년에는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가 풀렸습니다. 오히려 외국인 투자는 주주의 투명·책임경영에 대한 요구를 증대시켜 총수 중심의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며, 선진 경영기법의 전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소버린이 SK텔레콤의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도 괜찮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기·철도·통신 등 국가기반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소유는 제한돼야 합니다. 요컨대 소버린이 SK텔레콤 등으로 영향을 주고 소유권을 확보해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투자보다 자본이익이 목적인 투기성 자본에 대해서는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투기자본의 단기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토빈세' 같은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 SK그룹 계열사들의 SK글로벌 지원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계열사간 지원행위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SK그룹 계열사 지원은 시장과 채권단의 자율적인 행위라는 차원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들은 공정위의 조사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기업의 애로를 듣기 위해 자주 만나는 자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취임이후 경제5단체장, 4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모임을 갖고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앞으로도 기업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생각입니다. 기업 사람들을 만나면 앞으로는 철저하게 할 테니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어느 정도 덮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방법이 무엇이 있을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3년 시한을 정해 기업들이 정부가 원하는 만큼 달라질 경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공정위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전임 위원장의 수뢰 사건등 공정위의 실추된 이미지에 대해 물어봤다.
―전임 위원장의 구속 등 최근 잇단 사고로 공정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전임 위원장 관련 건으로 사회적 물의와 국민적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공정위가 자성하고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또 공정위의 조사방식이 업계의 반감을 샀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공정위는 직무 성격상 다른 기관보다 한층 높은 도덕성과 투명성이 요구됩니다. 이에 따라 다른 부처에 비해 훨씬 엄격한 내용의 '공정위 공무원 행동강령'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출장이외에 업체를 무단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무실 밖에서 기업체 임직원을 면담할 때도 반드시 보고토록 하고 있습니다."
/대담=배정근 경제부장
정리=조철환기자
● 프로필
58세·충남 공주
대전고·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박사
서울시립대 교수
경실련 정책연구위원장·경제정의연구소장
규제개혁위원장
부패방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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