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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 영화속 금연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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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서 담배가 사라질 수 있을까? TV 드라마에 비교적 높은 도덕성을 요구해 온 것과 달리 영화는 등급제가 강력하게 관철된다는 이유로 섹스, 폭력, 흡연 등에 관한 잣대가 너그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등 건강 관련 단체가 영화 속의 흡연 장면에 대해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최근 미 유산협회(ALF)는 2001년 TV를 통해 방영된 영화 예고편 중 14%에 흡연 장면이 나왔고, 이 기간 중 12∼17세 청소년 90% 이상이 영화 예고편에서 최소한 1회 이상 흡연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WHO는 5월31일 '세계금년의 날' 기념 행사에서 패션·영화계에서 흡연을 미화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상하게도 영화 속 흡연 장면이 영화에 대한 담배회사의 협찬광고(PPL) 금지 후 더욱 늘어났다. 1998년 미국 46개 주에서는 담배 회사가 돈을 받고 영화에 자사 담배를 노출하도록 하는 것이 금지됐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공익연구소는 98년 이후 흡연 장면이 50% 늘었다고 발표했다. 또 2001, 2002년 TV에서 방영된 216편의 영화 광고 중 67%가 흡연을 암시했으며 이중 3분의 1이 PG13(13세 관람가) 이하 등급의 영화에서 발견됐고, R등급(18세 이상) 영화에서는 흡연 장면이 85% 늘었다고 지적했다. 담배 직접 광고는 물론 영화 속 간접 광고마저 금지되자 담배 회사가 '밀거래'를 통해 영화에 흡연 장면을 더 많이 넣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WHO의 관계자는 "흡연 장면이 있는 영화를 아예 R등급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다. 최근 금연 캠페인을 강력하게 펴고 있는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어로 제작되는 영화의 흡연 장면은 삭제할 것"이라고 발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담배의 영화 속 간접 광고에 대한 규제는 없기 때문에 영화 속에 담배 브랜드가 노출되는 경우가 적잖다. 담배 회사들은 영화 촬영 현장에 수십, 수백 벌의 담배를 무상으로 지급, 자연스럽게 PPL 효과를 거둬왔다. 특히 지난해 영화 '2424'는 새로 출시한 타임 맨솔을 아예 제품명까지 거론해 비난을 받았다. KT& G측은 "'2424'의 흡연 장면은 애초에 시나리오에 있던 것"이라며 "담배 회사가 담배를 제공하기보다는 영화사의 담배 요청이 많다"고 밝혔다. KT& G는 "담배 소비를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까 봐 최근에는 담배 무상 배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흡연 장면이 많았던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라이터를 켜라'의 경우는 담배 협찬을 받지 않은 예다. '라이터…'의 이관수 PD는 "처음부터 흡연 장면을 설정한 것은 아니고 배우들의 캐릭터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담배 피우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담배 회사의 마케팅 전략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상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영화의 경우 흡연에 관한 세계 최고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지만, WHO가 '영화 속 흡연 금지'를 강력히 밀고 나가면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영화의 표현의 자유와 공익 논리가 크게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은주 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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