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외곽순환도로서울을 원을 그리며 감싸고 돈다는 서울외곽순환도로는 아직 원을 그리지 못했다. 마지막 구간인 일산―퇴계원 구간(36.3㎞)이 환경파괴 논란으로 북한산 국립공원내 사패산 자락에서 공사가 멈춰서 버렸기 때문이다. 2001년11월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대로 사패산을 뚫는 터널 공사가 중단된 이후 농성과 폭력배 난입의 악순환만이 거듭됐고 어느덧 1년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환경단체 및 불교계와 시행사인 서울고속도로(주) 등은 4월 합의에 따라 노선재조정위원회를 구성, '의정부 외곽 우회냐, 원안대로 산을 뚫느냐'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양측은 한치 양보 없이 대치만 거듭하고 있다. 시행사측은 기존 노선 이외의 결정이 나오면 경제성이 떨어져 공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측 역시 백지화를 약속한 대통령 선거 공약을 거론하며 완강하다. 이 와중에 경기 의정부시와 양주군 주민들은 양측 명분 싸움에 주민들만 교통난에 시달린다며 아우성이다. 노선재조정위의 활동은 5일 마감을 앞두고 있다.
● 경부고속철 2단계 사업
현재 운행중인 원전(原電) 18기의 방사성폐기물 임시 저장고는 2008년부터 하나씩 꽉 찬다. 이에 따라 정부는 7월까지 동·서해안에 처리장을 1곳씩 확보하겠다며 후보지를 물색중이다.
정부는 당초 2월에 경북 울진, 경북 영덕, 전남 영광, 전북 고창 등 4곳을 후보지로 선정했으나 예외 없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자 수익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양성자가속기사업 등과 연계시켜 내달 15일까지 재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사회종교단체들과 공동으로 '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시위와 삭발 등으로 저항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후보지 선정 논란의 핵심은 시설의 안정성 여부. 주민들은 "이동 운반과정에서의 사고위험으로 절대 안전하지 못하다. 그렇게 안전하면 청와대 앞에 지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반대급부도 만만찮아 지자체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등 부지 선정을 둔 갈등은 난마처럼 얽혀있다.
● 경인운하 건설
인천 서구 경서동에서 서울 개화동에 이르는 18㎞구간을 너비 100m 수로로 연결하는 경인운하는 90년 중반 착공됐다. 투자되는 사업비는 무려 1조8,429억원. 인천 부천 김포 등지의 상습침수 지역 주민 150만 명이 수해위험에서 벗어나고 경인지역에 새로운 교통수단을 제공할 수 있어 이 정도 투자는 경제성이 있다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한강하류의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될 것이란 환경단체의 주장에 경제성 없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이 같은 논란 와중에 1월 경인운하 백지화를 선언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결국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지만 아직 어떠한 결론도 못내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인운하 건설 8개 시나리오 중 7개가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환경단체는 "건교부가 KDI에 압력을 행사해 결과를 조작, 경제성을 억지로 끌어냈다"며 반대하고 있다. 6월말까지 경인운하 정책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알려졌다.
● 호남고속철 분기역
분기역 선정은 올해도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해를 넘길 채비다. 대전 충·남북 등 3개 지자체는 이에 따라 지리한 갈등을 되풀이 할 전망이다. 3개 시도는 각각 천안 대전 청주(오송)를 대표선수로 내세워 의회와 시민단체까지 가세한 가운데 양보 없는 경쟁을 벌여왔다.
분기역 선정 작업은 1990년 사업 타당성 조사 이후 10년간 관련 용역발주 및 재검토 등을 거듭하며 공방이 이어져왔다. 건교부는 당초 올 상반기에는 분기역 입지를 최종 결정키로 했으나 3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빌미로 다시 한번 유보 방침을 밝혔다. 행정수도 입지를 정한 뒤 내년 하반기에 분기역을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충남도는 천안분기역 이야말로 속도와 호남권 승객 편의 등에서 가장 유리하다며 교통개발 연구원 용역결과에 따른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대전시는 사업비와 수익성 등을 들어 당위성을 주장하고, 충북도는 국토의 균형발전 및 경부고속철 연계성 등을 강조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전준호기자 jhjun@hk.co.kr
이동훈기자 dhlee@hk.co.kr
전문가 진단
■조 명 래 단국대 사회학부 교수
현 정부는 분권, 참여,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정 정도의 정부 간섭을 필요로 하면서도 실행 과정에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경쟁에 의존하는 모순을 보이게 된다. 통치의 중심 철학이 없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때문에 국정 현안을 다룰 때마다 목소리 큰 이해 당사자의 손을 들어주거나 결정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환경이든, 개발이든, 개혁이든 통치권자의 국정 철학이 분명할 때 제대로 된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
최근 표류하고 있는 국책사업은 개발과 환경보전이 충돌한 것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이 문제에서 분명한 자기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국정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철학과 비전에 근거한 국정수행 방향이 서있지 않다.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권 해 수 경실련 정부개혁위원장
경부고속철도 2단계 사업, 새만금사업 등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이해 세력들이 충돌하고 있지만 정부는 조정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갈등은 깊어지고 국가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무원칙과 그릇된 문제해결 방식에서 기인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익단체와의 직접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공부문의 개혁을 지연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대통령과 일부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과 말 바꾸기는 국책사업을 비롯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켜 상충되는 이익의 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자율성과 당사자간 대화 및 타협만으로 이익집단의 문제를 풀면 무책임, 무대책 비판이 제기되고 해결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원칙을 명확히 하고 정책을 그에 입각해 결정, 수행해 '원칙에 타협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박 정 근 전북대 농경제학과 교수
국책사업들이 진척되기는커녕 이해집단간 갈등만 첨예화하고 있다. 현안을 둘러싼 거듭된 혼선도 우려스럽지만 이들 문제의 해결을 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매우 안타깝다. 정부는 갖가지 사안을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경제논리로만 풀려고 하는 것 같다. 각 사안이 지니는 역사성과 배경, 그 동안의 절차를 무시하고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만 집착한다. '목소리만 크면 된다' '지금이 아니면 얻어낼 수 없다'는 인식이 번질까 걱정된다.
통치자는 과거에 대한 통찰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원칙을 세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쌀이 남아돌기 때문에 새만금을 재검토하라는 논리에선 그러한 통찰과 원칙을 찾아볼 수 없다. 정부가 고속철도 등 산적한 국책문제를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고 깊이, 그리고 긴 안목에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풀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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