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들은 요즘 외국인 학생들에게 새 I-20(입학허가서)을 발급하느라 바쁘다. 외국인 학생은 미국 공인 교육기관이 발행하는 I-20이 있어야만 유학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고 외국 여행은 물론 수강신청, 사회보장번호 및 운전면허 취득 등 제반 유학생활이 가능하다.I-20 기간이 만료되면 유학생 신분도 종료되는 것이어서 미국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에게 I-20은 미국생활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셈이다.
올 초 이 I-20과 관련된 미국 유학 관련 법률이 바뀌면서 새로 미국에 입국하는 유학생은 물론 미국에 체류 중인 학생들도 모두 보안체계가 강화된 새로운 I-20을 발급 받게 되었다. 미 이민국(INS)이 주도하는 새 유학생 관리 시스템 SEVIS(Student & Exchange Visitor Information System)는 각 학교가 자체적으로 발급하던 I-20을 이민국이 통제하도록 했다. 또 입학 허가일 30일 내에만 입국할 수 있게 되는 등 몇몇 조항이 바뀌었다.
얼마 전 학교측이 주최한 SEVIS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니 새 I-20에 찍힌 SEVIS번호만 입력하면 해당 외국인 학생의 출결석 상황은 물론 학점, 외국 여행 기록, 주거지 이전 기록 등 개인 정보를 미 이민국이 고스란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미국 내 각종 테러 사건에 유학생을 가장한 테러리스트가 다수 연루돼 있어 관리 필요성이 높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측은 SEVIS 운용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외국인 학생들에게 부담시킨다며 매 학기 등록 때마다 50달러의 SEVIS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에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한꺼번에 항의 메일을 보냈고 대학 메일 서버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항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학생들은 "자신들(미국인)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 관리 비용을 관리 대상인 외국인 학생에게 거두겠다는 것이 과연 미국식 합리주의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학기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학교 측의 고압적 강공에 밀려 결국 납부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미국에서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유학생에게 가해지는 여러 제약을 거론하며 '약자'로서의 울분을 토로한 반면 다른 편에서는 장학금과 생활보조 등 유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거론하며 오히려 이 제도를 잘 이용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주장들이 조화를 이뤄 한국 유학생들이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이 상 연 미국 조지아대 저널리즘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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