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 속에 출범 100일을 맞았다.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세계경제가 악화하는 등 외부 여건이 불리했지만, 전환기 사회적 욕구 분출과 이해 갈등을 조정·통제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전문적 역량을 보이지 못한 탓이 크다. 참여정부 국정의 중추적 인물들에게서 지난 100일에 대한 반성과, 국정 혁신을 위한 다짐과 계획을 듣는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서로 대등한 파트너로 협력하는 노사관계 구축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권기홍(權奇洪) 노동부 장관은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을 제대로 이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 출범 후 계속된 노동정책에 대한 논란과 비판에 정부는 '친노동'도 '친기업'도 아니라며 조심스런 자세를 보였다. 노동 현실에 대한 이상주의적 공감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대해 "나는 대단히 실용주의적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하지만 취임초 '노동부조차 경제부터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서는 안 된다. 노동부의 목소리,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일침을 가하던 소신은 굳건했다. 또 "기업이 재크나이프를 들고 노조와 싸우면…" 등 직설적 언사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권장관은 "언론이 보도과정에서 거두절미하는 바람에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2일 과천정부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권 장관을 만나 최근 잇단 파업사태와 노동정책의 방향에 대해 입장을 들어봤다.
―장관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학계에서 덕망을 쌓아온 학자였는데 관료조직에 몸담은 이후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공무원들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크다는 신뢰감을 쌓았습니다. 이젠 장관과 정부가 정책의 기본 방향을 어떻게 잡고 그들과 호흡하며 역량을 동원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사회적 기대와 관심이 큽니다. 과거 정부의 노동정책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과거에도 정부는 '협력적' 또는 '생산적' '안정적' 노사관계를 지향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노사관계의 상(像)이고 방법론적 측면이 배제된 개념입니다. 우리는 협력적 노사관계 실현을 위해 사회통합적 방식을 택했습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노(勞)와 사(使)가 서로 대등한 파트너로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주체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친노동적'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정부 출범 후 발생한 일련의 노동문제를 '법과 원칙'에 의해 해결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던데요.
"정부는 대화와 타협, 법·제도적 개선의 지속적 추진, 엄정한 법 집행 등 세 원칙에 근거해 노사관계에 임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많은 경우 '대화와 타협'에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사정책의 세 원칙은 선후 관계가 있거나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상시적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불법이라도 정당한 요구는 수용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법은 법으로서 당연히 엄정하게 집행돼야 합니다. 법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어 개정이 추진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현행법을 준수하고 엄정하게 집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법이 집행되는 중에도 대화를 단절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불법행동이라도 주장이 정당하다면, 정당한 주장은 수용하되 법은 법대로 집행하겠습니다. 불법행동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과 정당한 주장에 귀 기울이고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것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되 그 수위는 상황에 따라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산업현장이나 현행 노동관련 법·제도에 노동계가 불법적 방법 없이 (비록 정당한 요구라도) 의사를 표출하거나 주장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정당하건 정당치 못한 요구이건 불법을 감행하는 원인이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현실에는 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존재합니다. '잘못된 법이니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하는데 이런 현실이 문제입니다. 노사에 유·불리를 떠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를 구축할 필요를 느낍니다. 불합리한 법을 무조건 준수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약속함으로써 정부는 현행법을 집행하는데도 도덕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가 인색합니다. 철도, 화물연대,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의 대형사건에서 정부가 갈팡질팡한 때문 아닙니까.
"모두 노정관계에서 해결할 사안들이었습니다. 정부가 노조의 힘에 밀렸다거나 법적 대응 없이 일방적으로 노조의 요구를 들어준 건 아닙니다. 철도의 경우 민영화 철회는 인수위에서부터 추진했고, 해고자 복직은 지난해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었습니다. 화물연대파업의 경우 포항의 폭력사태에 대해 사법처리가 이뤄지고 있고 공무원노조도 징계 절차가 진행중입니다."
―지금까지 노정관계로 미루어 노동부가 앞으로 노사관계에서 노측에 편향되게 조정하거나 사측에 양보토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노정관계에선 정부가 협상의 파트너입니다. 상대의 요구를 일부분 수용하지 않으면 협상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노사관계에서 정부가 어느 한편에 서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특정한 사회세력의 입장에 서면 스스로 존립기반을 흔들게 됩니다. '친노동적'이라고 하는데 정부 내 토론과정에서 노동부가 노동시장이나 근로여건, 실업문제 등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역할입니다."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상황 때문에 노동 관련 법과 제도 개혁 추진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장기적 전망 속에서 단기적 대응을 구상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격경쟁력이 중요합니다. 임금비용이 관건인데 이는 임금 액수 뿐만 아니라 제반 근로조건과도 연계되므로 노동계에 자제를 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노동자의 희생만 강요하면 그 당부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뿐더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장기적 경쟁력은 사람에 있습니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법과 원칙'보다 '대화와 타협'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느냐는 평가입니다. 어느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습니까.
"'대화와 타협'과 '법과 원칙'의 경중을 따지는 이분법적 사고는 피했으면 합니다. 병행 추진합니다만 상황에 따라 외형적 양상은 다를 겁니다. 폭력이 난무하면 '법과 원칙'이, 평화로운 분규에서는 '대화와 타협'이 두드러지겠죠. 노동부는 노사분규관리부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궤도연대를 비롯해 많은 노사분규가 6월 들어 분출할 전망입니다. 노사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노사가 역지사지하길 바랍니다. 우선 노조는 노사관계에만 치중하지 말고 노노관계도 생각했으면 합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는 노동운동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노조조직률 0.7%도 안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영세근로자에 대한 배려가 노동운동 내부에서 수렴돼야죠. 노동운동을 성숙시키려는 노력이 지속됐으면 합니다. 기업도 어려운 상황일수록 투명하게 노동계와 신뢰를 구축했으면 합니다."
/대담=윤승용 사회1부장
정리=문향란기자
■ 권기홍은 누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로 참여정부의 노동복지정책을 가다듬었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윤덕홍 교육부총리, 이종오 대통령직인수위 간사 등을 배출해, 노무현 정부의 싱크탱크로 평가받는 대구사회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대구지역의 대표적 개혁성향 학자 출신. 유럽식 사회정책을 전공했고 성장과 소득재분배 문제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노무현 선거캠프의 대구지역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민주당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사회복지문제에 관심이 많아 1997년 설립한 사회복지재단 '더불어'를 부인 서정희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1949년 대구 출생 73년 서울대 독어독문과 졸 8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85년 영남대 상경대 경제학과 교수 96년 (사)대구사회연구소장 96년 영남대 통일문제연구소장 97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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