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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집권층의 경제 시각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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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집권층의 경제 시각 바꿔야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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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불안하다. 일시적인 경기 하강이나 기득권층의 저항쯤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자칫 더 큰 어려움이 올 수 있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므로 지금이 1997년보다 안전하다고 보는 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오히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위험 요소는 더 많아진 반면, 이를 흡수해줄 장치나 수단은 현저하게 취약해졌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기 힘들다.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은행 부실은 줄었지만 그 대가로 재정의 건전성은 악화되었다. 무분별한 소비부양책은 금융시장을 취약하게 몰아갔고 정작 소비지출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경기가 살아나 수출이 펴거나 기업심리가 회복되어 투자가 늘기 전에는 당장 경제가 나아지기 힘든 상황이다. 보다 넓게는 지난 정권에서 하다만 구조개혁을 지속하고, 새로운 경쟁력 창출을 위한 창의적인 산업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사실 취약한 경제를 상속한 참여정부가 경제불안의 모든 책임을 떠안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 가슴에 와 닿는 비전과 전문가가 수긍하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는 면하기 어렵다. 사실 지금쯤이면 이라크 전쟁 이후의 분위기를 타고 수출과 투자도 살아나고 소멸됐던 개혁의 불씨도 다시 지펴야 할 때인데, 오히려 개혁세력과 안정세력 모두에게 매를 맞는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냉소적인 견해가 많지만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문제가 우리 내부에 있다면 해결책도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바꿔야 한다. 우선 경제를 보는 집권층의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경제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기 힘들므로 사후 처방보다는 사전에 좋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방법론이 좀더 명확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재분배, 지방분권, 기업개혁 등의 원론적인 개혁 방향은 타당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과 수단을 택할 것인지, 또한 재원이나 수단의 한계로 목표간의 충돌이 발생할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밑그림이 필요하다. 개혁의 성공은 개혁의 한계를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느냐에 비례한다.

나아가, 개혁과 안정은 함께 안고 가야 할 사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속적 성장에 대한 비전이 없이 형평을 강조하면 자칫 구호와 주장만 내세우는 정부라는 오해를 받는다. 특히 최근의 경기침체는 단기적 경기순환, 외부요인, 경제구조의 결함이 혼재한 상황이므로 어느 한 측면만 보지 말고 정면대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체질을 강화하며 단기부양은 안한다' 하는 식의 대립적 사고를 내세우면 시장은 그만큼 정부의 정책능력을 폄하하게 된다.

이념과 정책능력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복지, 노동, 재벌과 같이 일견 이념성이 짙어 보이는 분야도 실제로는 경제논리에 의해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정책부실로 경제가 망가지면 결국 사회적 약자만 희생된다. '좋은 정책'이 현 정부의 이념적 목표 추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개혁의 정당성 확보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최초의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 위기극복이라는 명분이 있었던 김대중 정부에 비해 현 정부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정당성이 약하기 때문에 그만큼 집권초기의 밀월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을 펴기 전에 집행가능성을 먼저 고려하는 신중함과 치밀함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겪는 어려움의 상당부분은 '신뢰의 위기'다. 안에서 끼리끼리 하는 토론으로는 해법을 찾기 힘들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힘을 받기도 어렵다.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나라 장래부터 걱정할 때다.

전 주 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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