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공간'(감독 로치렁·羅志良)은 다름 아닌 장궈룽(張國榮)의 유작이란 점에서 무척이나 기다려지던 화제작이다. 그가 좀처럼 출연한 적이 없었던 공포물이란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영화는 '링' '디 아이' '검은 물밑에서' 등을 연상시키는 심리 공포물이다. 그는 원혼에 시달리는 번역가 얀(카레나 램·林家欣)을 치료하다가 자신이 원혼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자살 직전까지 치닫는 정신과 의사 짐으로 등장한다.이쯤 되면 '이도공간'(사진)은 그저 한편의 픽션물이나 장궈룽의 유작이라는 의미 정도로만 머물기 힘들 터이다. 하필이면 왜 그는 자신의 유작이 될 작품으로 공포물을 선택한 걸까. 그렇다면 혹 영화가 그를 때 이른 죽음으로 재촉한 건 아닐까. 억지일지도 모를 이런 물음을 던지는 까닭은 영화 속에서 장궈룽의 죽음과 연관짓지 않을 수가 없는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줄곧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를 비롯해 "네가 뭘 원하는지 알아. 내가 뛰어 내리길 원하는 거지?" 등등.
사실 '이도공간'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영화적 수준을 보이진 않는다. 이 영화로 홍콩 금장상 최우수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고는 하나, 감독은 연출력에서 고른 호흡을 구현하는 데 실패한다. 플롯의 과도한 상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카레나 램의 연기는 경직된 감이 없지 않다. 심지어 장궈룽의 연기에서도 예의 최고 수준을 끌어내진 못한다. 그런데도 영화는 남다른 울림을 전한다. 좀처럼 잊기 어려운 강렬한 여운을. 이 영화만의 묘한 매력이다.
한편 '튜브'(감독 백운학)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구미가 당기는 작품이다. 우리 영화사상 최초로 지하철을 주 무대로 벌어지는 '초강력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란 점에서. '쉬리' 조감독 출신의 데뷔작답게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별 손색이 없다. '쉬리'를 볼 때처럼, "어쭈, 제법인데" 하고 감탄할 법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수준급 액션들이 펼쳐진다. 당장 도입부부터.
문제는 그게 영화의 거의 전부라는 것이다. 영화는 '비천무'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 등 이 땅의 여느 액션 블록버스터들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는다. 최종 편집 과정에서 상영 시간에 맞춰 적잖은 분량을 잘라내야 하는 통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사에서 결정적 균열을 드러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잘 짜여진 드라마를 기대하진 말아야 한다. 액션 블록버스터의 속성 상 '미션 임파서블' 류의 액션으로 승부를 거는 거니까 말이다.
아기자기한 드라마나 '튀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원한다면 잭 니컬슨·아담 샌들러 주연의 '성질 죽이기'가 제격이다. '9·11' 이후 더욱 강력해진 미국의 집단적 히스테리를 반영하고 있는 영화는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한 순간의 오해가 어떤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한바탕 해프닝을 통해 극히 유쾌하고도 통렬하게 보여준다. 니컬슨과 샌들러는 각각 '어바웃 슈미트'와 '펀치 드렁크 러브' 못지 않은 인상적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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