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다시보는 우리만화] 순정만화 대모 엄희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다시보는 우리만화] 순정만화 대모 엄희자

입력
2003.06.05 00:00
0 0

커다란 눈망울에 긴 속눈썹, 오똑한 콧날.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청순 가련형 소녀. 이런 공주 풍 소녀 그림은 지금도 우리 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단골 그림이다. 대부분 만화 주인공이 모델이다.만화산업의 최대 고객은 청소년 그룹이고, 그 가운데 70% 이상이 떠꺼머리 소년들이다. 소녀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엄연한 '제2위 소비계층'이다. 이들을 위한 만화는 여성 만화가가 창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이유는 이야기 구성에서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수성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알콩달콩한 내용에 잔잔한 감수성을 담아내는 만화, 소녀취향 만화를 '순정만화'라 부른다. 일본의 경우 여성 독자층을 미성년과 성인으로 나누고, 틴에이저들이 찾는 만화를 '소녀만화', 후자를 '레이디코믹스'(lady comics)라 한다.

우리 나라의 순정만화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약 20년 간. 대본용 만화와 잡지 만화를 통해서였다. 이 시기 최고의 인기 작가로 소녀들을 웃기고 울렸던 작가가 바로 엄희자(嚴喜子·61) 선생이다. 이범기 선생 등 당대 인기 만화가 문하에서 오래 그림수업을 받았고, 1963년 '공주와 기사'란 만화로 데뷔를 했다.

엄 선생의 만화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그림체가 우선 꼽히는 매력이다. 1세기의 한국 만화사에서 가장 예쁜 소녀 모습의 주인공이다. 대개의 여성 작가들이 예쁘고 귀여운 소녀주인공 얼굴을 묘사하고 있지만, 인체나 풍경 등의 배경그림 데생에서는 남성 작가들에게 다소 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엄 선생은 완벽에 가까운 인체 묘사와 배경 처리 솜씨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60년대 이후 우리 순정만화의 창작 경향은 '엄희자 풍'이 본류를 이루었다. 순정만화 최초의 '창작 교과서'라 불릴 만했다.

엄희자 만화의 또 다른 장점은 우리 소녀들이 공감했던 '우리식 이야기' 구성력이었다. '카치아', '보리피리', '하얀등대'(이상 66년 발표)를 비롯해 '사랑의 집'('빨간머리 앤'각색, 69년), '푸른지대'(79년), 그리고 80년대 초반에 발표한 '사운드 오브 뮤직'에 이르기까지, 그는 순수창작품과 외국소설의 각색 등 다양한 순정만화를 창작해 냈다. 외국소설 원작의 경우에도 철저한 '엄희자 식 만화 각색'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엄 선생은 67년 인기 남성만화가이자 그림 스승이었던 동갑내기 조원기 선생과 결혼, 우리 만화사상 첫 '스타 만화가 부부'가 됐다. 8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곧바로 현지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돼, 남편과 함께 원화(原畵) 작가로 활동했으며 지금도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다. LA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에게서 '환상적 소녀의 모습을 그려내는 한국의 만화가'로 불리는 등 성가가 높다.

엄 선생은 얼마 전 국제전화통화에서 "한국 사람이란 점과 특히 한때나마 최고의 순정만화 작가였다는 프라이드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순정만화는, 한국과 미국을 통해 '시들지 않는 꽃'으로, 지금도 활짝 피어 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