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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빗소리, 귀 기울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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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빗소리, 귀 기울여봐"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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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엔 쏟아 붓듯 내리는 장대비를 보면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입은 옷 그대로 비를 쫄딱 맞으며 흙마당에서 뛰어다니다가, 수돗가 커다란 양동이에 들어가 철벅거렸다. 집에 있는 우산이란 우산은 있는 대로 다 꺼내 펴서 우산집을 만들어 놓고, 친구들과 어둑한 그 안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던지 낄낄대고 웃었다. 아무리 옷이 다 젖어도, 어른들이 비에 젖은 머리를 제때 안 말리면 이 생긴다고 걱정해도, 재미있고 신나기만 했다.'비야, 내려라'(캐런 헤스 글. 존 무스 그림. 삼성출판사)는 삼 주일 동안이나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은 여름날의 이야기이다. 드디어 비가 내리자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거리로 뛰어나가고, 엄마들도 나와 상쾌한 비를 맞으며 춤을 춘다.

'야, 비 온다'(이상교 글. 이성표 그림. 보림)의 주인공 단이는 우산을 선물받고 비 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비 오는 날, 단이는 밖으로 나가 고양이, 개구리, 물고기, 자동차, 신호등에게까지 우산을 쓰라고 한다. 비는 '토독 토독 톡토독, 똑또닥 닥또닥, 후둑 후둑 후두둑, 토닥 토닥 탁탁탁' 우산 위로 떨어진다. 비가 그치자 다른 것들은 이미 우산을 다 접었다. 그런데 하늘만 아직도 우산을 쓰고 있다. 무지개 우산! 저 위에는 아직 비가 오나 보다.

'비 오는 날'(유리 슐레비츠 그림, 글. 시공주니어)은 연노랑, 연두, 파랑색을 주조로 한 수채화와 이야기가 잔잔하고 차분해서 조용히 사색을 할 만하다. 한 소녀가 다락방 침대에 올라앉아 등 뒤로 비 오는 것을 느낀다. 비는 지붕 위에, 유리창에 부딪치고 온 마을에 내리고 언덕과 풀밭, 연못에도 내려 냇물을 이루고 강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간다. 비 오는 날의 바다는 하늘에 녹아 든다. 비가 그치면 나무는 새싹을 틔울 것이고 아이들은 밖에서 맨발로 놀 것이며 소녀는 웅덩이 속의 조각하늘을 뛰어넘을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다.

'노란 우산'(류재수 그림. 신동일 음악. 재미마주)은 비 오는 날, 우산 쓴 아이들이 하나 둘 집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고 놀이터를 지나 학교로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빗줄기 하나 그리지 않고 글도 없이 우산만으로 비 오는 아침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딸린 CD에는 이 책을 위해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이 있다. 음악을 들으며 한 장 한 장 음미하면서 볼 책이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가 '2002년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했다.

지금 나는 이중창문이 바람과 바깥의 소음을 잘 막아주는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도 없고, 마른 땅이 비에 젖는 냄새는 더더욱 맡을 수 없다. 비에 젖은 신이 현관을 더럽히는 것이 싫어 신문지를 깔아놓고, 아이들에게는 얼른 양말 벗고 곧장 화장실로 가라고 잔소리를 한다. 생활은 편해졌지만 자연과의 교감은 나날이 멀어지기만 한다는 각성이 자꾸만 책과 동심에 기대게 한다.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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