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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사회](6)사회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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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과 사회](6)사회적 성공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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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비롯한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그룹의 총수, 대표적 벤처기업 사장, 은막과 브라운관의 스타, 스포츠 영웅, 고소득 변호사나 의사 등 우리사회에서 소위 크게 성공한 사람들에게 "당신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하기보다는 십중팔구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들의 성공이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운 덕분이었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때로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자신의 성공에 대한 겸손한 표현일 뿐 정말로 운 때문에 자신이 성공했다는 뜻인 경우는 드물다. 반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선거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당신은 참 불운하군요"라고 말하면 잠시나마 위로를 줄 수 있을 법한데, 그것은 실패를 자신의 무능력보다는 운의 탓으로 돌려 자존심을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실패자 앞에서 "당신은 참 무능력하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무 탈 없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성공은 능력 차이?

성공과 실패를 운 때문으로 돌릴 때 예상되는 이런 상반된 반응은 우리사회에서 '능력'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능력은 많은 부와 소득, 좋은 대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성공의 열쇠이자 자부심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그래서 성공을 능력이 아닌 운 덕분으로 돌리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언짢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심까지 상하고 만다.

부와 소득 그리고 지위의 분배와 관련, 우리사회의 지배적 통념이 된 '능력에 따른 분배' 원리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빈곤한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억제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능해야 성공한다'는 통념의 이면에는 실패한 사람들은 무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과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암묵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메시지는 반복적 선전과 교육을 통해 개인들에게 내면화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기존질서를 비판하거나 위협하지 못하도록 한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내면화 과정은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그래서 자신의 성공을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며, 실패자들의 불우한 처지는 무능력의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사회와 국가가 실패자들을 돕는 경우 더욱 많은 무능력자들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우려하게 된다.

성공은 결과적 판단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성공은 정말 능력의 결과일까? 혹시 우리는 상황의 전말을 바꾸어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말해 성공이라는 결과를 보고 나서 성공한 사람이 유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복권당첨과 같은 명백한 경우가 아닌 한, 결과를 보고 어떤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 또는 큰 권력이나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은 능력이 출중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탁월한 능력보다 그저 남보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성공한 경우가 허다하다. 보통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대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다. 수 년 전에 수십 억 원의 복권에 당첨돼 현재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업가로 여겨질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의 2·3세 경영주도 궁극적으로는 탁월한 능력보다는 행운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과거에 서울 강남 개발과 같은 뜻밖의 행운 때문에 거부가 된 부동산 졸부들 역시 지금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성공한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을 것이다.

성공이란 결과를 통해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관행의 오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상적 예를 통해서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최고의 도박왕을 뽑는 대회에 1,000명의 도박사가 참가했다고 하자. 모든 참가자들이 저마다 나름대로는 최고의 실력자라고 자부하고 있어서 실력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무승부 없이 1대 1의 도박을 토너먼트로 계속해 나간다면, 첫 번째 판에서 500명이 탈락하고, 2회전에 500명만 진출하게 될 것이다. 경쟁이 거듭될 수록 다음 회전에 진출하는 도박사들의 수는 절반씩 줄어들어 6회전에 이르면 32명이, 그리고 7회전에 이르면 16명만이 남게 된다. 이 16명은 반드시 6회 연속 승리한 사람들이다. 단지 그 16명이 누가 될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이 경우 16명의 승리자들이 다른 도박사들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특출한 능력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들이 여섯 번 승리를 거두기까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행운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쟁 상대가 전날 밤 과음해서 두통을 앓았다든지,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경쟁자가 갑자기 기권을 했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한 우연 때문이었든지, 16명의 도박사들은 매 순간 작용하는 운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만일 같은 규모의 도박대회를 반복한다면 6회전을 통과한 16명의 얼굴은 그때마다 바뀔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절대적으로 공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승자들조차 운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는 매우 무능한 펀드 매니저들의 주식 투자를 가정해볼 수 있다. 주식시장이 상승장세를 달리고 있을 때는 아무리 무능한 펀드 매니저라도 그 중 일부는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무능한 펀드 매니저 1,000명이 1대 1의 투자대결을 벌여 진 사람은 시장에서 퇴장하는 게임을 진행한다면, 16명의 펀드매니저는 반드시 6번의 승리를 거두고 생존하게 된다. 물론 이들은 상승장세 속에서 대단한 수익률도 기록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은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 인물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대세가 하락기로 접어들면 이들의 성공이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아량과 겸허

이와 같은 논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시장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수많은 사업가들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생리상 결과적으로는 소수의 사업가만 성공을 거두게 돼 있다. 수많은 사업가들 가운데 소수의 뛰어난 사업가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다 열거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수많은 요인들 때문에 성패가 좌우된다. 사업의 성격, 국내외의 경제상황, 지정학적 요인, 기후변화, 개인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과 같은 돌발적 변수의 등장 등 사업가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개인적 성공과 실패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을 초월한 자연적·사회적·지정학적 운이 작용한다. 운이 닿지 않았더라면 성공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되고 자신은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으스대기보다는 성공을 가져 온 운의 작용에 감사해야만 한다. 또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로 불운 때문에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아량과 겸허함을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이야말로 성공의 최대 요인이었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나의 능력은 순전히 내가 노력해서 얻게 된 것인가?"

/김 비 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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