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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성공신화 윤윤수 <19> 또 한번의 교훈… 온수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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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샐러리맨의성공신화 윤윤수 <19> 또 한번의 교훈… 온수기 사업

입력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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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세계는 제2의 오일 쇼크에 휩싸였다. 각국에서 에너지 절약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국내 수출업계도 에너지 절약상품 개발에 매달렸다.이 무렵 평소 알고 지내던 바이어가 내게 소개해준 아이템이 '물탱크가 필요 없는 온수기'였다. 파이프속을 흘러가는 물에 순간적으로 열을 가해 온수를 공급하는 제품으로 지금은 비슷한 방식의 보일러가 흔하게 나와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미국의 히터전문 회사인 '더마르'와 공급계약을 맺은 나는 샘플 하나만 달랑 들고 국내에 들어왔다. 기계 관련 회사를 운영하던 W라는 친구에게 생산을 부탁했고 판매는 내가 맡기로 했다.

출발은 괜찮았다. 미국에서 가스제품이나 전기제품을 팔려면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산 가스제품으로는 처음으로 AGA 마크를 획득한 것이다. 그 동안 신발 비즈니스를 하면서 다져왔던 인맥 덕분이었다.

하지만 기술 축적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만든 제품이 미국 시장에 나가자마자 공급사인 더마르에 온수기에서 물이 샌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무려 80만 달러 어치에 대해 클레임이 걸렸다.

'제대로 된 기술 없이 장난감 헬기를 수출했다가 큰 코를 다쳤는데, 또 다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다가 장난감 헬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 규모도 컸다.

나는 당시 생산라인을 맡은 W에게 2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휠라와 함께 사업을 하는 인연으로 그 동안 나의 재정 보증을 해줬던 쌍용 미국지사마저 이 사고로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고심하고 있던 차에 뜻하지 않은 원군이 나타났다. 대대로 섬유사업을 해왔던 Y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업종전환을 모색하다 W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신이 온수기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 클레임이 걸려있는 물건만 처리해주는 조건으로 내가 투자한 돈을 받고 나는 온수기 사업에서 빠지기로 합의가 됐다. 생산을 맡고 있는 W와 새로 투자를 하게 된 Y,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항에 가보니 클레임이 걸린 컨테이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람 좋은 쌍용 미국지사의 정영우마저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내 목이 달아날 판"이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게다가 판매를 대행한 더마르마저 부도 직전이었다.

수소문 끝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브래드포드 앤 화이트'라는 보일러 회사를 소개 받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 "보일러 회사로서 구색을 갖추려면 앞으로 히트 상품이 될 무탱크 온수기가 있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다행히 내 설득이 먹혀 들어갔다. 에너지 절약이 화두로 떠오른 만큼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판단했는지, 더마르 대신 판매 대행을 맡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나는 온수기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또 한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온수기 사업의 실패는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장사를 하려면 무엇보다 품질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유통망이 튼튼하고, 마케팅 전략이 뛰어나더라도 결국은 물건이 좋아야 팔린다는 이야기다.

내가 발을 뺀 지 2년 만에 온수기 사업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판매대행을 맡은 브래드포드 앤 화이트에서 계속 기술지도를 해주었지만, 한국의 생산라인에서는 끝내 만족할만한 품질의 온수기를 내놓지 못했다.

품질만 좋았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품목이었는데 시행착오만 거듭하다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다. 무탱크 온수기 사업 분야에는 나중에 롯데기공 등이 뛰어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사업가는 승부사나 다름없다. 신중하다 못해 소극적인 자세도 문제지만, 자신의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만 앞서가서도 안 된다. 거듭되는 실패는 내가 사업가로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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