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만난 ‘튜브’의 김석훈은 대작 영화의 주인공답지 않게 우울해 보였다. 영화나 연기가 그렇게 우울한 수준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문제는허리였다. 스케이트 보드가 취미이고,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즐기는 그는 영화를 찍다가 무리하는 바람에 척추의 뼈와 뼈를 연결하는 디스크판이다 달았다고 한다.“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속이 상한다”고 했고, 특히 어머니의 걱정이 크다고 했다. “아니 총각이 허리가 아파서 어쩌지…”하는 농담으로 우울한분위기를 깨 보려 했으나 그의 허리 통증이 감염되는 듯했다. 그는 걱정이많았다. “영화 ‘튜브’가 잘 돼서 앞으로 이런 액션 영화 제의가 많이들어와도 걱정이다. 예전처럼 잘할 수 있을지.”배우는 몸은 재산이다. 그러나 영화계는 단지 “대역을 쓰지 않은 과감한액션”이라든가, “진짜 열심히 하는 배우”란 칭찬 한 마디를 위해 그들을 너무 몰아 세우는 건 아닐까.
할리우드에서 ‘찰리의 진실’을 촬영한 배우 박중훈은 영화 ‘황산벌’을계약하며, 하루 촬영은 12시간 이내, 이후 12시간의 휴식 시간 보장이라는조건을 계약에 명시했다. “사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다. 다른 배우들에게 좋은 핑계가 될 것 같다. ‘박중훈도 그렇게 했잖아요’ 식으로.”박중훈이 ‘프로’라는 점은 충무로 사람들이 대부분 인정한다. 그러므로단지 노동조건을 계약하는 것을 “몸을 사려서”라거나 “게을러서” 혹은“할리우드 진출한 것 자랑하려고” 등등으로 폄하할 수는 없을 것 같다.문제는 시스템이다. “죽도록 열심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열심히하다 죽는 것”은 문제가 크다. 우리 영화계는 그저 제작자, 감독, 배우개개인의 성격이나 성질,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촬영 시간과 액션의 정도가 정해진다.프리프로덕션(Pre_production)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배우를 어느 정도의강도로 액션을 할지, 어느 부분에서 대역과 실연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할지는 ‘감’으로 정해진다. 홍콩에서 영화 찍을 때 청룽(成龍)의 부상일지가 A4 용지 한 장에 달했지만, 할리우드로 가서는 거의 없는 것은 프리프로덕션의 미덕 때문이다.계획이 없으니 분쟁이 잦고, 그러다 보니 관객이 보기엔 대단찮은 액션을보였는데도 배우 몸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된다. “쯧쯧, M(매너)도없으면서”(배우가 제작자에게), “쯧쯧 M(몸)도 안 되는 것이….”(제작자가 배우에게) 이건 분명 아니다. 컷!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